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불심검문, 범죄예방과 인권침해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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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문/헤르베르트 말레하(Herbert Malecha, 1927~, 독일)/1955

경찰에 의해 불심검문을 받았을 때의 그 찜찜함이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특히 그런 불심검문이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등 공공장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신에게 쏠리는 수많은 타인의 눈들은 굴욕감마저 준다. 그렇다고 경찰의 요구를 거부하기도 쉽지 않다. 기껏해야 항의하는 수준에서 끝날 뿐 결국에는 불심검문에 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범죄자 얼굴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인상마저 범상치 않다면 경찰에 의한 불심검문은 일상의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실제 수배자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심리적 변화를 겪게 될까? 헤르베르트 말레하의 소설 <검문>은 세상 속으로 나온 어느 수배자의 심리가 무장해제되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다루고 있다

 

어느 수배자의 기막힌 반전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불안해하는 거야? 가당찮은 망상이지.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누가 나를 알아보겠어?"

그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도무지 사람들 속에 숨어들 수 없는, 마치 코르크처럼 여기저기 부딪히고 떠밀리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는 갑자기 얼어붙은 듯 멈추어 섰다.

"가당찮은 망상에 불과한 거지."

그는 다시 그렇게 중얼거렸다. -<검문> 중에서- 

 

 

수배자 신분으로 세상에 나온 그의 심리가 비단 코르크처럼 여기저기 부딪치고 떠밀리는 존재이기만 할까? 군중 사이를 걸어갈 때는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부여잡고’, 낯선 남자의 접근에 손톱 색깔이 변할 정도로 힘을 주어 탁자 모서리를 움켜쥐기도 하고’, 신분증을 보여줘야 할 상황에서는 손이 마치 나무토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옌스 레트루프가 본명인 그는 볼터라는 이름의 가짜 여권을 만들어 검문을 무사히 통과한다. 하지만 검문을 무사히 통과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의 발걸음은 한결 넓어지고 자신을 스쳐가는 사람들도 편하게 느껴진다. 도둑질도 해본 놈이 잘 한다고 했던가!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점점 심리적으로 무장해제되는 비운(?)을 겪게 된다.

 

다시 사람들 무리 속으로 들어가고 힘들지 않게 사람들과 보조를 맞춰 걷게 되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막힌 반전 즉 자신의 수배자 신분이 노출되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몇 명의 경찰이 군중들 사이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는 마치 샴페인을 마신 듯 자신감이 생겼고 10만번 째 고객이라는 행운까지 잡게 된다. 이름을 말해 달라는 총감독의 요청에 그는 가짜 여권의 볼터가 아닌 진짜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만다.

 

레트루프입니다. 옌스 레트루프.”

 

불심검문, 범죄예방과 인권침해 사이

 

자신이 뭐라고 말했는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그의 말은 홀 구석구석에 울려 퍼졌다.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군중들 사이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있던 경찰의 대열이 흐트러지고 경찰들이 그에게 다가오면서 소설은 막을 내린다. 단편소설의 특징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소설이지 싶다.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들에게 검문 또는 불심검문은 어떤 기분일까? 앞서도 언급했듯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경찰에 의해 불심검문을 받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위축감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들어 불심검문이 대폭 강화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집회 참가자에 대한 현행범 체포도 급증하고 있어 인권 후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불심검문이 논란이 될 때마다 정부와 경찰은 범죄예방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보통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본다는 점에서 심각한 인권침해라는 의견 또한 만만치 않다. 하지만 범죄예방과 인권침해라는 논란 이전에 범죄예방을 위한 사회적 고민은 생략되어 있는 것도 현실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도 마찬가지다.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하기보다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인권침해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공권력이나 법집행이 통제나 감시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 더 심각한 것은 불심검문이나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가 평범한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나 폭력 가해자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범죄와 폭력 예방을 위한 진지한 고민이나 사회적 합의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민주 사회의 기본이다. 소나기 피해가듯 즉흥적인 대책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사회적 고민이 절실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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