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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세월호는 레테의 강을 건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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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김애란(1980~)/2014 

 

그리스 신화에는 죽음의 신 하데스가 지배하는 저승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 등장한다. 인간이 죽으면 아케론, 코키토스, 플레게톤, 스틱스, 레테라는 이름의 다섯 강을 건너 영혼의 세계에 안착하게 되는데 각각의 강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케론을 건너면서 망자는 죽음의 고통을 씻어낸다. 뱃사공 카론의 배로 아케론을 건너면 코키토스라는 통곡의 강을 건너야 한다. 이승에서의 시름과 비통함을 내려놓기 위해서다. 망자가 건너야 할 세 번째 강은 불의 강 플레게톤이다. 망자는 플레게톤을 건너면서 아직도 남아있을 이승에서의 감정들을 불에 태워버릴 수 있다. 플레게톤을 건너면 무시무시한 스틱스가 기다리고 있다. 스틱스는 신들도 무서워할 정도로 위엄을 갖추고 있다. 신들이 스틱스에서 맹세를 하는 것도 이 강이 지닌 위엄 때문이다. 스틱스까지 무사히 건너면 마지막으로 레테를 건너야 한다. 망각의 강이라고도 불리는 레테에서 망자는 이승에서의 모든 기억들을 지우고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느닷없이 신화 속 저승에 이르는 강을 언급한 데는 최근 개봉한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의 원작자인 김애란의 신작 단편소설 <입동>을 읽고서였다. <입동>은 어느 젊은 부부가 아픔과 슬픔을 극복해 가는 과정은 담은 소설이다. 이 부부의 아픔 뒤에는 52개월 된 아들 영우의 죽음이 있다. 기쁨 뒤에 따라오는 게 슬픔이라더니 딱 맞는 말인가 보다

 

사진>다음 검색

 

오랜 고민 끝에 아내와 나는 결국 이 집을 사기로 했다. 집값의 반 이상을 대출로 끼고서였다. 몇십년간 매달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를 떠올리면 자주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남의 주머니가 아닌 공간에 붓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억울함이 덜했다. 누군가 아파트 역시 당신 집이 아닌 커다란 남의 주머니일 따름이라고 일러준다 해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앞으로 영우가 어린이집을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겠다며 기뻐했다. 사실 자긴 그게 제일 좋다고. 근처에 편의시설이 많은데다 서울보다 공기도 맑아 마음에 든다고 했다. -<입동> 중에서-

 

요즘 여느 젊은 부부처럼 내 집 마련은 이 부부에게도 오랜 꿈이었다. 결국 경매로 20년된 아파트를 구입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아내는 집을 꾸미는 데 반년 이상 공을 들였다. 집안 가구들을 새로 사는 대신 10년 가까이 쓴 낡은 침대와 의자며, 식탁, 수납장 등을 직접 리폼했다. 마치 정착의 사실뿐만 아니라 실감이 필요한 듯 아내는 휴일마저도 베란다에서 살았다. 그러나 난임 치료를 받고, 두 차례 유산 끝에 얻은 아들 영우가 다니던 어린이집 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를 겪은 뒤 아내의 부푼 꿈은 영우의 죽음과 함께 멈추고 말았다. 무기력해져만 가던 아내는 중단됐던 새 집 인테리어를 시작하면서 아들 영우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슬픔을 극복해 간다 

 

아내가 오랫동안 삶의 무기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은 단순히 아들 영우의 죽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생떼 같은 자식을 잃은 어느 부모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 아내를 더 아프게 했다. 내가 그리스 신화를 떠올린 건 소설 속 부부의 아픔과 슬픔이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와 판박이였기 때문이다. 불과 몇 달 전에 우리는 유사 이래 가장 참혹한 현장에 있었다. 삼백 명이 넘는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순간을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긴박한 상황에 어느 누구도 침몰하는 배 안으로 뛰어드는 사람도, 구조를 지시하는 사람도 없었다. 애타는 가족의 절규만 있을 뿐 국가와 사회의 역할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렇게 아들을 잃고 부모를 잃은 유가족들에게 국가는 너무도 당당했다. 아니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한 최소한의 죄의식도 부끄러움도 없었다  

 

박재동 화백이 그린 단원고 2학년 6반 이태민군. 사진>한겨레 

 

어린이집 원장은 영업배상보험에 가입돼 있었다. 가해 차량 역시 자동차종합보험을 들어 우리는 보험회사를 통해 민사상 손해배상을 받았다. 많다거나 적다거나 하는 세상의 어떤 잣대나 단위로 잴 수 없는 대가가 지급됐고, 어린이집쪽에서는 그걸로 일이 마무리됐다 생각하는 듯 했다. 운전사를 바꾸고 당시 현장에 있던 보육교사까지 이직시켰는데 무얼 더 바라느냐고 묻는 듯 했다. 직접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우리를 대하는 표정이나 태도가 그랬다. -<입동> 중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의 민낯은 더 기가 막혔다. 수백 명의 억울한 죽음의 원인을 밝혀야 할 사회는 벌써 세월호 피로감을 얘기하고 있었다. 보수언론이 조장하고 국가가 부추겼다. 급기야 단식하는 유족들 앞에서 폭식 행사를 벌인 희대의 패륜아들까지 생겼다. 시민단체를 가장한 어느 극우 조직은 세월호가 국가 경제를 어렵게 한다며 세월호 리본을 강탈하기도 했다. 국가는 이들을 제지하기는커녕 연일 경제 논리로 세월호와 국민들을 이간질시키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국가의 이런 전략이 성공했는지 우리 사회는 망각의 늪으로 끌려가듯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했던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까 우리를 피하고 수군댔다. 그래서 흰 꽃이 무더기로 그려진 벽지 아래 쭈그려 앉은 아내를 보고 있자니, 아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입동> 중에서- 

 

우리 사회에서 세월호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성장주의에 매몰돼 생명과 인권을 경시했던 우리 사회의 부끄럽지만 생생한 민낯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 사회를 병들게 했던 적폐를 일소할 수 있는 의지가 우리 사회에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세월호 이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물려줄 것 없는 미래세대에게 그나마 상속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일 수 있는 것이 세월호다. 그래서 세월호는 신화 속 레테의 강(망각의 강)을 건널 수도, 건너서도 안 되는 엄중한 현실이다. ‘잊지 않겠습니다는 희망을 만드는 유일한 대안이자, 스스로에게 내리는 각성의 채찍이다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소설 제목 입동은 타인의 위로가, 서로의 위로가 절실해지는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에 해당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다시금 떠올리는 겨울이어야 한다. 세월호는 레테의 강을 건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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