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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놀부를 위한 변명, 흥부는 게으른 가난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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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부뎐/최인훈(1936~)/1995

 

수절 과부 욕 보이기, 여승 보면 겁탈하기, 길가에 허방 놓기, 제비 다리 부러뜨리기, 열녀 보고 험담하기, 이장하는 데 뼈 감추기, 배앓이 하는 놈 살구 주기, 오 대 독자 불알 까기, 만경창파에 배 밑 뚫기, 제주 병에 오줌 싸기, 우물 밑에 똥 누기, 오려논에 물 터놓기, 갓난 아기 똥 먹이기, 남의 노적에 불지르기, 초상 난 데 춤추기, 불 붙는 데 부채질하기, 똥 싸는 놈 주저앉히기, 늙은 영감 덜미 잡기, 아기 밴 계집 배 치기, 곱사 엎어놓고 발꿈치로 치기……. 우리가 아는 놀부의 만행은 요즘으로 치면 거의 범죄 수준이었다. 조선 시대 살았기 망정이지 21세기 대한민국 시민이었다면 전과 수십 범은 됐을 놀부가 그 동안 우리가 읽었던 <흥부전>의 내용이 잘못 알려졌다고 하소연한다.

 

제비가 물어다 줬다는 흥부네 박씨의 진실

 

세상 사람 들어 보소. ‘흥부뎐자초지종이 이러한데 야속할손 세상 인심이요, 괘씸할손광대 글쟁이 솜씨더라. 있는 말 없는 말에 꼬리를 달아 원통한 귀신을 매섭게 몰아치고 웃으며 짓밟더라. 세상일에 속에는 속이 있고 곡절 뒤에 곡절인데 겉 보고 속 보지 않으니 제가 저를 속이며 소경이 제 닭 치고 동리 굿에 춤을 춘다. 강남 제비 박씨 받아 흥부가 치부했다니 이 아니 기막힌가. 어느 세상에 가난한 놈 박씨 물어다 주는 복제비가 있다던가. -<놀부뎐> 중에서-

 

즉 부모로부터 한 짝 버선 나누듯 똑같이 나누어 가진 유산을 놀부 자신은 부지런히 일해 큰 재산으로 불렸지만 동생 흥부는 게으르고 일확천금만 노리다가 다섯 평 오막살이 신세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식솔은 얼마나 많은지 형 놀부는 동생을 볼 때마다 울화가 치민다. 놀부의 못된 심보로 동생 흥부가 부지런한 가난뱅이로 살았다는 기존의 <흥부전>은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놀부의 놀부에 의한 놀부를 위한 변명뿐이다. 놀부에 따르면 동네 못된 놈들의 감언이설에 솔깃해 재산을 탕진하고는 일확천금만 노리다 알거지가 된 사연은 둘째 치고라도 흥부의 게으르기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흥부전. 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다섯 평 지붕을 가리는디 마른 짚만 오라는가. 한여름 풀 흔할 적에 장대 같은 싸리, 갈대 베어 찬찬 묶어 고이 말렸다가 지붕에 얹고 보면 이 아니 든든한가. 천지의 반이 흙이요, 솟는 것이 물인데 흙 이겨 바르는 벽이 내 동기 논이라 마다든가. 헌 자리 삿자리도 앞 냇물 뒤 냇물에 푹 담가 썩썩 씻어 내면 어느 하늘에 벼락이 칠 건가. 동지섣달 한풍에 흥부 집안 살펴보면 측은은 커니와 오장육부가 꼴리고 못난 놈 미운 놈 생각이 상투 끝 가득이라. -<놀부뎐> 중에서-

 

게다가 제비 다리 고쳐주어 그 보은으로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로 큰 부자가 되었다는 흥부의 이야기도 그 자초지종은 따로 있었다는 놀부의 증언은 더 충격적이다. 그 사건으로 착한(?) 놀부 자신도 옥살이를 했다니 그 사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놀부의 전언에 의하면 일확천금만 노리던 게으른 가난뱅이 흥부는 어느 날 파직당한 양반이 숨겨놓은 돈을 주워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되었는데 제비 다리를 고쳐 주고 돈을 얻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놀부는 흥부가 가져온 돈을 원래 자리에 두려다가 다시 권세를 차지한 양반에게 걸려 흥부와 함께 옥에 갇히고 온갖 고문을 당하며 자기 재산마저 다 빼앗기고 옥방 원혼이 되었다는 것이다. <흥부전>과 같은 내용이 있다면 어찌 어찌 해서 끝내 형제의 우애를 되찾았다는 것이다. 요즘 웃프다라는 말이 유행한다는데 옥방에서 형제가 주고받은 시조 한 수가 딱 그 짝이다.

 

전주 감영 달 발근 밤에/옥듕에 들히안쟈/큰칼 목에 차고/큰 시름 하는 차에/어디서 바시락 쥐 소래는/나의 애를 끈나니

 

우리 형데 죽어 가서/무엇이 될고 하니/만슈산 제일봉에/두 사람 신션 되어/세상일 내 몰라라/바둑 장기 두리라 -<놀부뎐> 중에서-

 

고전의 재해석과 현실 풍자

 

살펴보았듯이 최인훈의 <놀부뎐>은 기존에 알고 있던, 독자들에게 각인된 흥부와 놀부의 이미지를 깡그리 뒤집어 엎는다. 부지런한 가난뱅이 흥부와 욕심 많은 부자 놀부는 게으른 가난뱅이 흥부와 부지런한 부자 놀부로 대체되고 있다. 시동생 흥부의 뺨에 주걱 세례를 퍼부었다는 놀부 마누라도 인정 많은 부잣집 규수로 묘사되어 있으니 머리 속에 언뜻언뜻 잘 그려지지 않는 그림이 <놀부뎐>이다.

 

착한 흥부 가난하고 악한 놀부 부유하며 착한 흥부 부유차니 도둑놈이 되었으며 악한 놀부 착하자니 재물 목숨 잃고서야 이루었다. 쥐가 살자니 고양이가 죽어야 하며 고양이가 살자니 쥐가 죽어야 하는구나. 고양이 쥐 생각하라 함은 벼슬아치 백성 생각하라 하고, 부유한 자가 가난뱅이 생각하라드키 아니 될 말이로다. -<놀부뎐> 중에서-

 

고전이 오랫동안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세월의 때가 묻을수록 명불허전이 되는 것도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재해석과 재창조가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평가되는 가치 기준이 다르다는 말일 것이다. 분명 왕조 시대나 권위주의 시대에는 지지부진한 국가의 역할을 대신해서 흥부처럼 열심히 살기만 하면 언젠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정치논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비록 새끼 제비 다리를 고쳐주어 그 제비가 커서 박씨를 물어다 주어 부자가 되었다는 허황된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기존의 <흥부전>을 재해석해 <놀부뎐>을 내놓으며 놀부를 현대적 인간형으로 재창조하고 싶었던 것일까? 충분히 개연성 있는 해석이다. 무능력한 흥부보다 성공한 캐릭터인 놀부형 인간이 각광받는 세상이니까. 하지만 <놀부뎐> 속 패러디와 풍자를 읽다 보면 저자의 또 다른 의도도 읽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부지런히 일해도 팍팍한 현실을 벗어나기는커녕 더욱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고 마는 현실에 대한 풍자가 그것이다. 땀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불가능하게 하는 제도와 시스템의 부재가 놀부의 놀부에 의한 놀부를 위한변명을 낳지는 않았을까? 놀부의 이 마지막 한 마디도 우애를 회복한 동생 흥부에게 한 말만은 아니었으리라!

 

이놈 흥부야 장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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