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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물 한 모금'의 인심도 모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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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모금/황순원(1915~2000)/1943년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참담했다.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를 빗대어 잔인하다는 표현을 쓰는 인간은 그야말로 오만함 그 자체였다. 스스로를 동물과 구분하기 위해 만든 이성은 인간의 잔인함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되고 말았다. 슬픔을 나눠도 모자랄 판에 울고 있는 이들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조롱하는 인간들과 같은 공기로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에 모든 것을 토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표현의 자유가 버러지 같은 인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현실에 더 참담했다. 물리적 폭력만이 잔인함의 전부가 아님을 목도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지난 6일 광화문 광장에서는 일베(이하 일간베스트 저장소) 회원과 보수 대학생 단체 회원 100여 명이 이른바 '폭식 행사'를 열었다.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의 단식 농성장에서 불과 2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세종대왕 동상 앞에 모여서 피자와 치킨을 나눠 먹으며 세월호 유가족들을 조롱한 것이다. 이들은 광화문 광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행사라고 주장했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시민들은 없었다. 과연 이들의 부모가, 이들의 형제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어도 이런 몹쓸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이들의 행동을 철없는 젊은이들의 치기쯤으로 치부하기에는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남긴 상처와 고통이 너무도 크다. 게다가 세월호 유가족들이 겪고 있을 고통과 슬픔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하겠느냐 말이다. 나는 순진하게도 이들의 어이없는 행동을 보면서 소설가 황순원이 말한 '물 한 모금'의 인심이 떠올랐다. 정말 순진하게도 이들도 그 정도는 알겠지 하면서. 하지만 대단한 착각이지 싶다. 이들의 가슴에 그 정도의 온기라도 남아 있었다면 애시당초 저렇듯 게걸스럽게 광화문 광장을 더럽히지 않았을 것이기에.

 

▲광화문 광장에서 '폭식 행사'를 열고 있는 일베 회원들. 사진>오마이뉴스 

 

시골 간이역 앞벌을 길게 가르고 지나가는 개울둑 가까이 초가집에 잇달아 지은 헛간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아직 문도 해 달지 않은, 바람벽도 사날 전에 초벽을 바른 듯 아직 흙이 마를 날이 멀었지만 잠깐 비를 피하기에는 여간 좋은 장소가 아니다. 그저 지나가는 비쯤으로 생각했는데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고 밖은 을씨년스런 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장마비처럼 좀처럼 멎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럴수록 이 조그만 헛간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 초가집 헛간에 모여든 사람들의 면면도 행색도 다 제각각이지만 그나마 비를 피할 곳이 있다는 것에 안심할 뿐이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모인 곳인지라 어색하기 그지 없지만 비를 피하기 위해 이곳 헛간을 향해 뛰어오는 행인들의 우스꽝스러운 꼴을 구경삼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노인이 그냥 천천히 걸어 다리를 다 건너는 것을 기다려서야 청년은 정말 급하게 다리에 올라선다. 그러나 청년은 예에 의해 몇 발자국을 떼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다리 때문에 몸의 중심을 잃고 두 팔을 허공에 내저으며 몸을 비틀기 시작한다.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손짓 몸짓이었다. 마치 어른이 지금 바로 걸음마를 타기 시작한 듯한 꼴이다. 그러다가 청년은 겨우 몸을 바로잡았으나 다시 급하게 몇 걸음 내디뎠는가 하면 다시금 몸을 비틀면서 팔을 무슨 촉수처럼 내젖는다. 그러나 청년은 종시 제 성급함을 어찌하지 못한 채 그냥 몇 번이고 같은 것을 되풀이하면서 다리를 건넌다. -<물 한 모금> 중에서-

 

 

아무리 누추해도, 급한 김에 눈에 띄는 곳이라 모여들긴 했지만 엄연히 임자가 있는 집인지라 헛간에 모여든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한가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라도 주인이 쫓아내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게다가 비는 그칠 태세도 아니고 이제 사람들은 한기까지 스며들어 몸이 으실으실 거린다. 이 때 나타난 참으로 험상궂게 생긴 사내, 중국 사람인 이 집 주인이다. 자기네 세간에 손이나 대지 않나 살피려는 듯 이편 저편 잠시 기웃거리더니 이내 가버리고 만다. 주인이 아무 말없이 왔다간 뒤 사람들은 비가 아주 멎지는 않았지만 이곳을 떠나보려 하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도 없다. 이 때 다시 주인이 나타나더니 이번에는 한 손에 주전자를 들고 한 손에는 찻종 하나를 들었다. 이 중국 사내는 무표정하게 주전자와 찻종을 사람들에게 내민다. 

 

 

찻종에 붓는데 김이 엉긴다. 그 김을 보기만 해도 속이 녹는 것 같다. 먼저 수염 긴 노인이 마시고, 노파가 마시고, 그러고는 옆 사람 순서로 마신다. 한 모금 마시고는 모두, 에 돟다(좋다), 이제야 속이 풀리눈, 하고들 흐뭇해한다. 단지 그것이 더운 맹물 한 모금인데도. 그러나 그것은 헛간 안의 사람들이나 밖에 무표정한 대로 서 있는 주인이나가 모두 더운물에서 서리는 김 이상의 뜨거운 무슨 김 속에 녹아드는 광경이었다. -<물 한 모금> 중에서-

 

비를 피한다는 명목으로 일언반구 양해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집을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물 한 모금' 건네는데, 생떼같은 자식의 억울한 죽음 앞에 슬픔을 속으로 참으며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차가운 길바닥에 내몰린 사람들 앞에서 '폭식 행사'라니 우리 사회의 민낯이 이보다 더 참담할 때가 있었을까? 표현의 자유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다. 하지만 이런 표현의 자유는 비극일 뿐이다. '물 한 모금'의 인심이 절실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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