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사랑 없이는 못사는 여자, 비난만 할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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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여인/안톤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 1860~1904, 러시아)/1899년

 

누구를 사랑하지 않고는 단 한순간도 견디지 못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사랑한 남자는 야외극장 티볼리의 대표이자 연출감독인 쿠킨이었다. 처음에는 지루한 비로 극장을 열지 못해서 신세 한탄을 하고 있는 그를 동정했지만 그 동정은 점차 사랑으로 변해갔다. 남자들은 그녀를 '귀여운 여인'이라고 불렀다. 아무리 사소한 얘기라도 즐겁게 들어주고 늘 미소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쿠킨과 결혼했고 둘은 행복했다. 쿠킨은 늘 불만, 불평에 성격 또한 음산했다. 그녀는 남편이 된 쿠킨의 이런 성격도 다 이해했다. 예술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쿠킨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했다. 이것은 그녀가 남편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쿠킨이 급사했다는 한 통의 전보를 받았고 비탄에 빠졌다. 

 

"가엾은 바니치가, 그리운 사람! 왜 나는 당신과 만나게 되었나요. 어째서 당신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된 것인가요! 당신을 먼저 보내고 이젠 누구를 의지하란 말입니까." -<귀여운 여인> 중에서-

 

그녀가 두번째로 만난 남자는 상복을 입은 채 미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난 푸스토발로프라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바바카예프라는 목재상 주인이었던 푸스토발로프의 호의에 감동했고 그도 그녀에게 조금씩 호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푸스토발로프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그녀는 마치 열병에라도 걸린 듯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남자도 마찬가지였나보다. 결국 그는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둘은 결혼에 성공했다. 6년을 사는 동안 그녀는 목재상 푸스토발로프의 아바타나 마찬가지였다. 그 흔한 연극 한 번 보지 못할 정도로 일중독인 그였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사랑할 대상이 있다는 것만도 축복이었으니까. 하지만 두 번째 남편인 푸스토발로프도 대수롭지 않은 감기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또 다시 그녀는 미망인이 되었다.

 

"당신이 없는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요? 너무나 슬프고 불행해요. 친절한 여러분,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의지할 데라곤 아무도 없는 저를……." -<귀여운 여인> 중에서-

 

▲사진>구글 검색 

 

두 번째 남편이 죽고 난 후 그녀의 생활은 마치 수녀와도 같았다. 이 여자 정말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일까? 세번 째 남편은 푸스토발로프와 살 때 그녀의 집에 세들어 살던 젊은 수의관 스미르닌이었다. 두번 째 남편이 죽은 후 집에만 파묻혀 살던 그녀에게 위안이 되어 주었던 유일한 사람이 스미르닌이었다. 그는 아들이 하나 딸린 이혼남이었다. 다시 그녀는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세번 째 결혼에 골인했다. 하지만 그녀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스미르닌 소속 부대가 시베리아로 이동하게 되어 따라갔기 때문이다. 또 다시 혼자가 된 그녀는 영혼 없는 나날을 보냈다. 특히 그녀에게는 자기 생각이라는 것이 없어졌다. 늘 만났던 남편의 아바타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식어가는 피를 덥혀 줄 뜨거운 사랑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녀는 거리에서 우연히 스미르닌과 재회했고 다시 뜨거운 사랑을 준비했다. 하지만 스미르닌은 전 부인과 재결합한 상태였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사랑의 대상을 찾아야만 했다. 사랑 없이는 단 한순간도 못 사는 여자였으니까.

 

그녀가 새로운 사랑의 대상으로 선택한 사람은 스미르닌의 아들이었다. 남녀간의 뜨거운 사랑 대신 스미르닌의 아들을 마치 친어머니처럼 사랑했다. 세 남편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샤샤(스미르닌의 아들)를 따라했다. 그녀는 행복했다. 하지만 또 불안했다. 샤샤의 친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데리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늘 초조하고 두려웠다.

 

'하르코프에게 전보가 왔구나!'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며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하르코프'는 샤샤의 어머니가 샤샤를 부르는 애칭이다. 아, 어쩔 것인가! -<귀여운 여인> 중에서-

 

사랑 없이는 단 하루도 못 산다는 그녀의 이름은 '올렌카'였다. 안톤 체호프는 그녀를 '귀여운 여인'이라고 표현했다. 어디가 그렇게 귀엽길래. 올렌카의 외모가 그랬던 것일까? 혹자들은 이렇게 올렌카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아니 체호프까지 싸잡아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줏대도 없이 이 남자 저 남자에 기대어 사는 여자가 귀엽다고? 당신 제 정신이야' 이라고 말이다. 게다가 톨스토이까지 체호프의 소설 <귀여운 여인>을 극찬했다는 얘기까지 들으면 어안이 벙벙해 질 수밖에.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남자에 기대어 자기 영혼마저 포기하고 사는 여자를 귀엽다니 도통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학은 꼭 권선징악일 필요도 없고 다수가 공감해야만 할 필요도 없다. 세상에는 다양한 피부색과 다양한 언어만큼이나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한다. 올렌카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체호프는 그런 다양한 사람들 중의 한 명을, 그런 다양한 사랑의 방식 중에 하나를 소개해 줬을 뿐이다. 세상의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도 미덕이라면 미덕이다. 사랑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다는 올렌카라는 여성을 통해 사고를 확장하고 사고에 살을 찌우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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