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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삶의 지혜가 있는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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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집/이솝(Aesop, BC 6세기?, 그리스)지음/연대 미상/유종호 옮김/민음사 펴냄

 

북녘 바람과 태양이 누가 더 센가로 말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래서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쪽을 승자로 하는 데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바람 차례가 먼저였습니다. 그러나 그 심한 돌풍은 나그네로 하여금 옷을 바짝 조여 입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북녘 바람이 더욱 세게 불자 추위로 몸이 단 나그네는 가외로 외투까지 걸쳤습니다. 마침내 바람은 싫증이 나서 차례를 태양에게로 돌렸습니다. 처음에 그저 따뜻할 정도로만 햇볕을 주어 나그네는 외투를 벗었습니다. 이어서 아주 뜨겁게 열을 내어 더위를 이기지 못한 나그네는 옷을 벗었고 근처의 강으로 목욕을 하러 갔습니다. -<이솝 우화집> 중에서-

 

시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 이야기를 읽자마자 뭔가 떠오르는 게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김대중 전대통령의 대북정책이었던 '햇볕정책'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이솝 우화의 한 토막이다.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끄는 힘은 강경책보다는 대화와 설득을 통한 유화책이 더 효과적이라는 게 '햇볕정책'의 핵심이다. 생전에 독서광으로도 유명했던 DJ다운 발상이 돋보이는 정책이지 싶다 

 

▲이솝 우화집/이솝 지음/유종호 옮김/민음사 펴냄 

 

우화의 사전적 의미는 '일반적으로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으며 인간의 어리석음과 약점들을 부각시키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우화를 언급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둘 있는데 바로 고대 그리스의 노예이자 이야기꾼이었던 이솝(그리스어로는 아이소포스)과 프랑스의 라퐁텐(Jean de La Fontaine, 1621~1695)이다. 하지만 라퐁텐의 우화시집도 이솝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하니 이솝이야말로 우화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 부지런한 개미와 게으른 베짱이 이야기, 잦은 거짓말로 신뢰를 잃어 버린 양치기 소년 이야기,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 등은 누구나 한번쯤 읽어봤을 우화일 것이다그러나 여기서 꼭 언급해야 될 유명한 말이 있다바로 <톰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의 '고전'에 관한 정의다그는 '고전이란 언젠가 읽어봤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한번도 읽은 적이 없는 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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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집>의 많은 이야기들을 어릴 때 이미 읽어봤고 들었기 때문에 이솝 우화를 다 읽어봤다고 착각하곤 한다. 아니면 귀동냥으로 얻은 몇 가지 이야기만을 이솝 우화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수백 편에 달하는 이솝 우화를 다 읽어본 성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솝 우화를 소설과 같은 권선징악의 문학으로 오해하기도 하고 동물들만 등장하는 걸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실제 <이솝 우화집>을 끝까지 읽어봤다면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삶 속에서 부딪치는 다양한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와 이 대처하는 처세술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어릴 때 읽었던 이솝 우화는 아이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내용들을 뽑아 재구성한 것으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가령 직접 관계없는 일에 참견하다가는 이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풀밭에서 풀을 뜨고 있다가 나귀는 이리가 자기에게 달려오는 것을 보고 절름발이 시늉을 했습니다. 이리가 다가와서 왜 다리를 저느냐고 묻자 나귀는 울타리를 뛰어넘다 가시를 밟았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잡아먹기 전에 가시를 빼라고 충고하였습니다. 가시가 목에 걸리지 않도록 말이지요. 이리는 함정에 빠져 나귀의 발을 들어 올렸습니다. 이리가 골똘히 나귀 발굽을 살피고 있을 때 나귀는 이리의 입을 발길로 차서 이빨을 빠뜨렸습니다. -<이솝 우화집> 중에서-

 

이솝 우화에는 의인화된 동물들만 등장하지는 않는다.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비롯한 그리스 신들이 등장해 인간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을 꾸짖곤 한다. 그리스 신화나 플라톤이 저술한 책 등에서 신화로 소개된 이야기들도 이솝 우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마지막에 희망만이 남았다는 판도라의 상자나 죽기 전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는 백조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 대해 이솝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설에 따르면 인간보다 동물들이 먼저 창조되었습니다그리고 제우스 신은 동물들에게 기운 셈과 발 빠름 혹은 빨리 날음과 같은 갖가지 힘을 부여하였습니다신 앞에 벌거숭이로 서서 인간은 자기만 이러한 재능을 부여받지 못했다고 투덜대었습니다. “그대는 부여받은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이성이란 재주 말이다이성은 하늘에서도 땅 위에서도 전능한 것이고 강자보다 힘센 것이며 빠른 자보다도 더 재빠른 것이다.” 하고 제우스 신은 말했습니다인간은 베풀어 받은 것을 깨닫고 숭배심과 감사의 마음으로 차서 그곳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솝 우화집중에서-

 

<이솝 우화집>에는 207편의 짤막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여기에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도 있고, 처음 듣는 이야기들도 있다. 속독을 하는 독자라면 30분이면 쉬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그러나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그 의미를 되새기다 보면 207권의 책을 읽은 것만큼이나 마음이 풍요로워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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