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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성장통, 그 혼돈의 시간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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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의 여름/박완서/1978

 

하루 걸러 종아리가 터질 듯 아팠다. 종아리뿐만 아니었다. 한 번 통증이 올 때면 무릎이며, 허벅지까지 온통 성한 데가 없었다. 그때마다 잠을 설치곤 했다. 변변한 보건소 하나 없었던 오지의 섬이라 그 정도로 육지까지 먼 항해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밤새 엄마가 다리를 주물러 주는 것이었다. 어느샌가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이면 멀쩡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국민학교(초등학교) 어느 무렵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부터인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지긋지긋한 통증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으니까. 나이가 들어서야 알았다. 그게 바로 성장통이었다는 것을. 오지도 오지였지만 엄마가 육지 병원에 나를 데려가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어쨌든 나는 유별난 성장통을 경험했다.

 

성장통은 의학적 개념으로 성장기 아동에서 기질적 이상 없이 나타나는 하지 통증을 말한다.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 없지만 대개 3~12세 아동 사이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의미로 성장통이라고 하면 육체적 변화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성장 과정에서 겪는 정신적인 변화까지를 성장통이라고 표현한다. 별 거 아닌 일에도 지나치게 흥분하기도 하고 반대로 극도의 좌절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대개 반항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도 없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기 때문이다. 소설 <엄마의 말뚝>으로 유명한 박완서는 성장소설 <배반의 여름>을 통해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이러한 변화, 성장통을 배반으로 표현한다. 저자에 따르면 성장통을 통해 찾게 되는 자아의 다른 이름은 늠름함이다 

 

▲박완서의 성장소설 <배반의 여름> 

 

저자는 아이가 성장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변화 중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우상이다. 누구나 그렇지만 특히 남자 아이의 경우 대표적인 우상은 아버지다. 아직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남자 아이에게 아버지는 세상의 전부다.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아빠가 되고 싶다는 대답도 아버지가 단순히 아버지가 아닌 세상의 전부인 우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채마밭을 가꾸며 과수원으로 품팔이를 다니던 아버지는 단단하고 장대한 체구를 가지고있었다. 든든한 목과, 정직한 눈과, 완강한 턱과, 넒은 가슴과, 대들보 같은 허리와, 길고 날렵한 건강한 다리는 아무하고도 안 닮은 아버지만의 것이었다. 제아무리 보디빌딩으로 단련된 훌륭한 육체도 아버지의 것과 견주면 생귤과 플라스틱 귤을 견주는 것만큼이나 뚜렷한 차이가 났다.

게다가 아버지는 아무하고도 안 닮은 아버지만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취직하고 나서 하루도 안 빼고 입은 옷으로 아버지의 늠름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재단된, 아버지같이 잘난 사람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옷이었다. -<배반의 여름> 중에서-

 

주인공 에게 비친 아버지의 모습이 이럴진대 아버지 빼고는 다 쪼오다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아버지의 현실을 보았을 때 는 그야말로 배반당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근무하는 방 유리창에는 수위실이라고 써 있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우상이 아닌 사랑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다고 우상이 영원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나이 때는 끊임없이 새 우상을 만든다. ‘에게 새로운 우상은 전구라 선생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언젠가 산산조각이 날 우상이었다. 아버지에 의해 새로운 우상전구라 선생의 실체가 벗겨졌을 때 는 풀(수영장) 속으로 팽개졌을 때 허우적대는 그 심정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가 여름날 겪었던 배반은 성장통이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아’, ‘늠름함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 허우적거림에서 설 자리를 찾고 바로 서기까지는 좀 더 오랜 시일이 걸릴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외부에서 찾던 진정한 늠름함, 진정한 남아다움을 앞으로 내 내부에서 키우지 않는 한 그건 영원히 불가능한 채 다만 허우적거림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홀로 늠름해지기란, , , 그건 얼마나 고되고도 고독한 작업이 될 것인가. -<배반의 여름> 중에서-

 

헤르만 헤세는 소설 <데미안>에서 말했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새는 그 알을 깨고 나온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성장통이 바로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힘겨운 과정이 아닐까? 그런 과정을 통해 새가 자유롭게 창공을 활주하듯이 아이도 힘겨운 성장통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꿈 속에 그리던 어른이 되는 것이다.

 

성장기 아이는 여름날 작열하는 태양과도 같다. 그 대상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열정이 샘솟는 시기다. 아이들은 소설 속 와 같은 때로는 다른 대상으로부터 수도 없이 배반을 당하며 살아간다. 그 결과 좌절하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에 대응하는 어른의 태도다. 이런 과정이 성장통이라는 걸 모르는 어른은,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장통을 이해하는 것은 어른마다, 부모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른 입장이 아닌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다면 그 혼돈의 시간이 오히려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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