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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플라톤도 강조한 선장의 윤리와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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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론/플라톤/BC 380(추정)/최현 옮김/집문당 펴냄

 

세월호 침몰 사고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과 함께 직업윤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수 백 명의 승객들을 침몰중인 배에 남겨둔 채 가장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은 그야말로 분노의 대상이자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 언론에 의해 공개된 선장을 포함한 세월호 승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검경 수사합동본부의 수사 내용은 한 명의 지도자 또는 지도층의 무사안일과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절실히 보여주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세월호 갑판부·기관부 등 선박직 직원들은 세월호 침몰 당시 선원들만 아는 통로를 이용해 한꺼번에 탈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세월호에 승선한 선원은 모두 24명으로 이중 갑판부·기관부 등 선박직 직원 15명은 모두 탈출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승객들에게는 객실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만 되풀이하면서 자신들은 조직적으로 배를 탈출한 것이다. 칼만 안 들었지 살인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전세계 해난사고의 불문율이라는 1852년 버큰헤이드호의 전통이나 1912년 타이타닉호 선장의 숭고한 희생이 우리나라에서만은 진짜 먼 나라 전설 속 황당한 이야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 플라톤의 국가론 

 

여자와 아이 먼저즉 승객 우선 구조라는 해난 사고의 불문율은 비단 버큰헤이드호와 타이타닉호를 통해서만 불문율이 된 것은 아니다.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도 그의 저서 <국가론>에서 선장의 의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배를 저어가는 선장의 경우를 생각해 보게. 참된 선장은 선원들의 우두머리인가 아니면 한 선원에 불과한가?

트라시마코스: 선원들의 우두머리요.

소크라테스: 선장에게는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일이 아니네. 그것은 그가 단순한 뱃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네. 선장이란 단순히 배를 타는 데 그 임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선원들을 인도하는 데 임무가 있다는 말이지

트라시마코스: 그렇소.

소크라테스: 그런데 앞에서 말한 사람들은 각자 자기 임무를 수행하면 어떤 이득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트라시마코스: 그야 그렇죠.

…중략…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어떠한 과학도 기술도 강자라는 우월자의 이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백성 또는 약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겠나?

 

항해중인 선박에서 선장은 최종적인 결정권과 명령권을 가지고 있다. 플라톤은 통치자의 역할이나 의무를 역설하면서 난파선의 선장을 예로 든 것이다. 지도자가 위기의 국가를 책임지듯 선장은 침몰중인 선박과 승객을 구할 최종적인 책임자인 것이다. 플라톤이 말했듯이 선장이 가지고 있는 항해술은 우월자 즉 자신과 승무원이 아닌 약자인 승객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은 어떠했는가? 침몰하는 세월호와 그 안에 갇힌 승객들을 외면한 채 탈출한 것도 모자라 신원도 밝히지 않고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는데만 급급했다는 것이 수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 영화 '타이타닉' 중에서 

 

소크라테스: 선장도 엄밀한 의미에서 뱃사람들을 지배하는 자이고 단순한 뱃사람은 아니겠지?

트라시마코스: 그렇소.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그런 의미에서의 선장이나 통치자란 그 자신의 이득이 되는 일을생각하고 명령하는 일은 없지 않겠나. 다시 말해서 그가 생각하고 명령하는 것이란 선원으로서, 지배를 받고 있는 자들의 이득이 되는 일이 아니겠나.

트라시마코스: (마지 못해) 그렇소.

소크라테스: 또 이런 말은 어떻게 생각하나. 즉 대체로 어떤 지배자도 그가 적어도 지배자인 한 결코 자신의 이득을 앞세우고 그것을 위해 명령하는 일은 없을 걸세. 즉 그는 피지배자들의 이득을 생각하고 그것을 명령할 걸세. 결국 지배자란 자기의 언행이나 또는 눈이 피지배자의 이득을 위해 있는 걸세.

 

언론과 여론이 초기 대응을 소홀히 하고 수 백 명의 승객들을 남겨둔 채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에 대해 분노하고 비난을 쏟아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조금은 냉정해질 필요도 있다. 알다시피 우리 언론의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초기 대응에 실패하고 승객들의 생명을 나 몰라라 한 세월호 승무원들을 향해 집중포화를 쏟아내면서 정작 중요한 문제들은 회피하고 있는지도 아니 회피하기 위해 일종의 마녀사냥(?)식 보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선박 회사와 승무원들은 물론 이들을 관리하고 감시해야 할 관계 기관들의 부실 또한 상상 이상으로 엉망이고 부패했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편 이들 행정 부처들을 최종적으로 관리해야 할 곳이 바로 청와대와 대통령이다. 이 말은 이번 사고의 최종적인 책임과 후속대책을 세워야 하는 이가 바로 대통령이란 뜻이다. 그러나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만만한 행정부처들의 부실만 보도할 뿐 청와대와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 종합편성채널에서는 대통령만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식의 어이없는 보도까지 내놓고 있다. 대통령도 이런 언론과 여론 분위기에 편승한 듯 어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도 이번 사고에 대한 단 한마디 사과도 없이 기존 언론보도 내용들만 나열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적잖이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 영화 '피터팬' 속 후크 선장 

 

그렇다고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의 범죄 행위가 결코 잠깐 데워진 냄비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가장 강력한 처벌로 다시는 이런 인재가 일어나지 않도록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은 뜨거운 가슴으로 실종자들의 생존을 빔과 동시에 무너진 시스템에 대해서는 냉철하고 냉정해야 하는 두 얼굴(?)일 것이다.

 

오늘 아침 조간신문을 보면서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피터팬>의 후크 선장이 떠올랐다. 동화 속 악당 후크 선장은 시계 소리만 들으면 노이로제 반응을 일으킨다. 피터팬과 싸우던 중 악어에게 시계를 차고 있던 오른손이 잘렸다. 그 이후로 시계 소리만 들으면 악어가 근처에 나타난 것으로 믿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 악어를 그렇게 무서워하고 피했지만 결국 악당 후크 선장은 악어밥이 되고 만다.

 

그저 재밌게 읽었을 뿐인데 문득 악어가 삼켜버린 시계에 어떤 메타포가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그것은 바로 시간 또는 세월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시간이나 세월을 상징하는 신인 크로노스도 낫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실제로 자식들마저 낳자마자 삼켜버리는 엽기적인 신으로 그려진다. 이 덕에 제우스가 올림푸스의 지배자가 되었지만. 어쨌든 <피터팬>에서 시계를 삼킨 악어나 크로노스의 엽기적인 행동은 어떤 인간도 시간과 세월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은유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장에 급급한 나머지 미처 되돌아보지 못했던 공동체 의식의 붕괴와 도덕적 해이, 이를 부추긴 우리 사회의 망가진 시스템들이 세월호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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