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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3·1운동은 항일을 넘어 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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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95주년이었던 지난 1일 서울 한복판에서는 볼썽사나운 꼴이 연출되고 있었다. 교학사교과서살리기운동본부와 자유통일포럼 등 보수단체들이 세종로 동화면세점 앞에서 일반 시민을 상대로 교학사 교과서를 판매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교학사 교과서를 구입했는지 모르겠지만 하필 3·1절에 친일옹호 서술로 비판을 받고 있는 교학사 교과서였는지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교사, 학생, 학부모 등 교육 주체들은 물론 양심적인 시민단체의 반대로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학사 교과서 채택이 무산된 이후 일부 보수 논객들은 일반 시민을 상대로 교학사 교과서를 직접 판매하겠다고 예고했던 터였다. 그런데 하필 3·1절이었다니 전세계적인 웃음거리를 자초한 셈이다.

 

어느 나라 보수도 외세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경우는 없다. 그렇다면 한국 보수는 왜 보수의 본질을 망각하고 일제 강점기를 미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을까. 아마도 그들이 보수 진영의 대표인물로 내세우고 있는 이승만과 박정희 때문일 것이다. 최근 신격화 시도까지 하고 있지만 두 전직 대통령이 친일 문제와 관련해서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다. 이승만은 해방 정국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서 친일 청산을 완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친일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무력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는 그 자신이 친일 행위를 했던 전력이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 보수가 이승만과 박정희를 우상화하고 신격화할수록 일제 강점기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반민족적이고 반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친일 청산에 미온적인 이들이 진짜 한국 보수를 대표하는 세력들이냐 하는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그렇지 삼일절에 친일 미화 논란 한복판에 서있는 교학사 교과서를 일반 시민들에게 판매할 생각을 했다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한편 3·1 100주년을 앞두고 3·1운동의 위상을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1운동이 단순한 항일운동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일대 전변의 계기를 제공한 혁명이었다는 주장이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26일 독립 운동계, 종교계, 학계의 원로와 단체대표들이 모여 3·1혁명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95주년을 맞는 올해부터 100주년이 되는 2019년까지 3·1정신을 올바로 계승하고 확산시키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결성식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학술 회의에서 제기된  3·1운동에 대한 재평가 주장이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3·1 운동의 역사적 성격과 이에 대한 독립운동 진영의 시기별 인식변화를 분석해 3·1 운동이 민족혁명인 동시에 민주혁명이었다고 규정했다. 3·1혁명을 통해 제국은 종지부를 찍었고 민국의 시대가 열렸으며 인민은 더 이상 1910년 이전의 신민이 아니라 목숨을 내건 투쟁을 통해 민주공화국의 주체임을 스스로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3·1혁명을 통해 일본제국 뿐만 아니라 대한제국도 부정되었다는 의미다. 이 연구위원은 그 근거로 3·1혁명 이후 탄생된 임시정부를 예로 들었다. 이후 독립운동 진영은 3·1정신을 계승하여 일관되게 민주공화제를 수용했으며 점차 인식을 심화시켜 일제말기에는 3·1혁명이라는 시각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해방이 되고 아직까지 3·1운동이라고 부르고 있을까. 이 연구위원에 따르면 제헌헌법 전문 논의 과정에서 이승만과 한민당 계열이 초안에 들어있던 3·1혁명 대신 3·1운동이라는 명칭을 집어넣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양대 박찬승 교수도 3·1혁명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다. 박찬승 교수에 따르면 3·1운동의 소산으로 탄생한 여러 임시정부들 즉 조선민국임시정부, 한성정부, 신한민국임시정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모두 공화제를 표방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194월에 만든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구절이야말로 3·1 정신의 총화라는 것이다. 특히 박찬승 교수는 국체와 정체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세계사적으로도 선구적인 것이며 이러한 흐름이 단순히 외부로부터 이식된 것이 아니라 한국인들 스스로 수용하고 발전시킨 것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3·1운동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3·1혁명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추진중인 남북공동학술회의와 국제심포지엄 등을 통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 위원회는 3·1정신을 기념하는 제대로 된 공간이 없는 현실을 감안해 순국유적지인 서대문독립공원에 3·1혁명 기념시설을 조성하는 시민운동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무튼 최근 일본의 군국주의로의 회귀가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3·1혁명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활동에 큰 기대를 걸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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