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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이들에게 권하는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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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집/윤동주 지음/범우사 펴냄

 

빨래줄에 걸어 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밤에 내 동생

오줌 싸 그린 지도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땅 지돈가?

- '오줌싸개 지도' 중에서-


 

40대 이상 성인들에게는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일 것이다. 어쩌면 저마다 이 풍경 속 주인공을 한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이불에 지도를 그린 날 아침에는 어김없이 머리에는 키를 쓰고 손에는 바가지를 들고 동네방네 소금을 구하러 다녔다. 창피를 주기 위함일 것이고 또 하나는 짜게 먹으면 물을 많이 마셔 오줌을 싼다는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으리라. 주절주절 읽으며 떠오르는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절로 퍼지는 재미있는 시(詩)다.

 

▲ 이불에 지도를 그린 날 아침에는 어김없이……  

 

한편 이 '오줌싸개 지도'란 시를 쓴 시인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입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와했다-'서시' 중에서-'는 윤동주라면 믿겠는가? 그저 저항시인으로만 알았던 윤동주 시인에게 이렇듯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감성이 있었다니 놀라는 독자가 꽤 있을 줄로 안다. 필자 또한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간' 중에서-'라고 노래했던 시인의 결연한 의지가 커다란 바윗돌처럼 뇌리에 깊게 박혀있으니 어리둥절할 수 밖에. 

 

범우 문고 열아홉 번째 책인 <윤동주 시집>에는 저항시인이었던 윤동주 시인에 대한 선입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마는 시들이 많다. '오줌싸개 지도' 말고도 가령 이런 시들 말이다.

 

헌 짚신짝 끄을고/나 여기 왜 왔노/두만강을 건너서/쓸쓸한 이 땅에

남쪽 하늘 저 밑에/따뜻한 내 고향/내 어머니 계신 곳/그리운 고향집 -'고향집' 중에서'-

 

까치가 울어서/산울림/아무도 못 들은/산울림/

까치가 들었다/산울림/저 혼자 들었다/산울림 -'산울림' 중에서-

 

가을 지난 마당은 하이얀 종이/참새들이 글씨를 공부하지요

째액째액 입으로 받아읽으며/두 발로는 글씨를 연습하지요

하로 종일 글씨를 공부하여도/짹자 한 자 밖에는 더 못 쓰는걸 -'참새' 중에서-

 

 그러나 그거 아는가? 가장 순수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세상을 가장 잘 꿰뚫어 본다는 사실. 소설에서 어린 아이의 똘망똘망한 눈으로 부조리한 세상을 바라볼 때 모순된 현실의 참상이 더 극적으로 묘사되는 것처럼 말이다. 간도 땅을 유랑해야만 했던 당시 조선인들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 만으로도, 그런 조선인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압제자에게는 엄청난 저항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글, 우리말을 제대로 배울 수 없었던 현실을 동시(童詩) 형식을 빌어 은유적으로 표현했으니 총을 든 저항보다 더 간담이 서늘했으리라.

 

▲ 내일이 설날이니 오늘은 까치 설날이렸다. 

 

까치 설날 아침에 문득 <윤동주 시집>을 떠올린 이유는 여태 논란 중인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관련 기사가 실린 조간신문 때문이다. 교학사 교과서 최종본에도 여전히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 과정이 축소되거나 완화되어 표현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독도 관련 내용은 '분쟁 지역'이라는 일본 입장을 그대로 싣고 있단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를 최종 승인해 줬다니 교과서로 그들의 정치 이념을 실현시키려는 정부의 의도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더 황당한 것은 일본 정부가 본격적으로 교과서를 통해 '독도 도발'을 감행하고 있는 최근에 외교부 장관이 장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았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과거를 사죄하지않는 일본을 향한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볼 수 없었던 항의의 표시하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국민을 속이려면 손발이라도 제대로 맞추던지. 한 정부 내에서 어느 부처는 일본의 뻔뻔한 주장에 동조하는 교과서를 최종 승인해 주는가 하면, 또 어느 부처는 그런 일본에 항의한답시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했다고 하니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뿐이다.

 

또 살아있는 양심의 승리로 끝날 것 같던 교학사 교과서 논란이 지방 어느 고등학교가 느닷없이 교학사 교과서를 그것도 1차 선정 때는 후보에도 없었던 것을 방학을 이용해 재선정했다니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전국 유일한 학교가 될 것으로 보이는 부산 부성고 교장은 교학사 교과서가 한국 근현대사를 가장 균형감 있게 썼다며 어떤 항의가 들어오더라도 바꿀 생각이 없다고 한다. 과거 반성이나 사죄는커녕 군국주의를 꿈꾸는 일본의 주장이 그대로 담긴 교과서가 균형감 있는 교과서라니 소가 웃을 일이다. 이제 알았을 것이다. 이들은 잔뜩 움츠리고 있다가도 국민들의 관심이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이때다' 싶게 그들의 욕망을 채우려든다는 것을. 항상 깨어있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다. 

 

까치 설날 아침, 역사 앞에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이들에게 <윤동주 시집>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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