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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따따부따

대한민국이 정녕 삼성 공화국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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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가 학력의 전부인 한상구는 대학 진학을 포기한 딸 윤미가 안쓰럽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취직한 지 2년만에 백혈병이 걸려 집으로 돌아온다. 상구는 빠듯한 형편에도 온갖 약을 써보지만 별 차도가 없다. 그나마 치료비마저 부족해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딸의 회사인 진성 인사관리팀 직원이 찾아와 딸에게 사표를 종용하고 산재를 신청하지 않으면 4천만원의 위로금을 준다고 말한다. 상구는 어쩔 수 없이 회사측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딸은 결국 사망하고 만다. 한편 상구는 딸 윤미가 일했던 라인에서 5명의 백혈병 환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날 이후로 상구는 딸이 안전장비 없이 화학약품에 노출된 채 일했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소송을 준비하는 등 투사로 변신한다. 

 

2월 6일 개봉 예정인 김태윤 감독의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이 시대 평범한 아버지(한상구)가 직장에서 백혈병이 걸린 딸(윤미)의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해 거대 자본를 상대로 싸우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영화 제목이 어디선가 들어본 듯 낯익게 느껴질 것이다. 바로 CF 속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슬로건을 패러디한 것이다. 주인공 상구가 상대해야 할 기업인 진성이 바로 삼성인 것이다. 이 영화는 2003년 21살의 나이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입사한 후 2005년 백혈병 진단을 받고 2년 뒤 세상을 떠난 황유미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는 것쯤이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기나긴 투쟁 끝에 2011년 1심에서 승소하게 된다.

 

▲ 故 황유미씨 사건을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 

 

故 황유미씨 사건은 2012년 <먼지 없는 방-삼성반도체 공장의 비밀>이라는 책으로도 출간되었다. 하나의 사건이 책과 영화로 동시에 나온 데는 거대 기업 삼성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흔히들 '삼성 공화국'이라고 한다. 비단 삼성이 우리나라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만을 빗댄 말은 아니다. 오히려 권력 위에 군림하는 자본(삼성)을 이르는 말이 바로 '삼성 공화국'이다. 어떠한 불법이나 탈법에 대한 법의 심판도 삼성만은 피해간다. 

 

2005년 세상을 떠들썩 하게 했던 삼성과 정치권, 검사들간의 관계를 폭로한 '삼성 X-파일' 사건은 '삼성 공화국'의 실체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X-파일' 문건 속에서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찰들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전 의원은 오히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국회의원 자격이 상실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행정·입법·사법부가 온통 '삼성 장학생'으로 채워졌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러니 영화 속에서 딸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려 고군분투한 주인공 한상기의 투쟁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보다 더한 장벽이었을 것이다.

 

이런 삼성이 이제 대한민국 교육마저 접수할 태세다. 대학이 삼성이 요구한 대로 줄서기를 해야 할 판이다. 삼성 입사를 위한 1차 필기시험인 ‘삼성직무적성검사’(Samsung Aptitude Test, SSAT)에 20만명 이상이 몰리는 등 '삼성 고시'를 방불케 하는 상황에서 때아닌 '삼성 입사 사교육'까지 생겨난 판에 이번에는 삼성이 직접 우리나라 대학을 서열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 故 황유미씨 사건을 다룬 만화 <먼지 없는 방> 

 

삼성은 지난 15일 서류전형 부활과 총장 추천제를 통해 5000명을 추천받겠다는 내용을 담은 인재 채용 개편안을 발표한 데 이어 23일에는 대학별로 총장 추천 할당 인원을 통보한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성균관대 105명을 비롯해 전국 대학별로 총장 추천 인원을 정해 통보했다고 한다. 삼성의 일방적인 통보에 유쾌할 리 없는 대학들이지만 청년 실업이 해마다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불편한 심기를 대놓고 드러낼 수도 없는 상황임은 자명한 현실이다.

 

이제 삼성의 총장 추천 할당 인원에 따라 대학의 서열이 정해질 판이다. 할당 인원 기준도 애매모호하다. 영남 지역 국립대에 비해 호남 지역 국립대는 할당 인원이 절반에 그치고 있다. 어쨌든 대학 교육마저 거대 자본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게다가 고등학생들은 할당 인원이 많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또 다른 사교육 시장의 한복판에 놓이게 될 것이고 진학한 대학의 할당 인원에 따라 누구는 사회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한때 유행했던 '루저' 신세로 전락하게 생겼다. 또 할당 인원이 적은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진학과 동시에 취업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교육을 '시장'으로 내몰아 무한경쟁, 고교 서열화를 부치기더니 이제 권력 위에 군림하는 거대 자본까지 나서 학문의 장이어야 할 대학을 취직을 위한 거대 입시학원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행정·입법·사법부에 이어 교육까지. 도대체 어느 분야까지 '삼성 공화국'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 될 것인지. 대한민국이 정녕 삼성 공화국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삼성 공화국'의 확산을 막을 제어장치도 보이지 않는다. 언론마저 삼성의 불법, 탈법이 이슈가 되기라도 하면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 전체가 다 망할 것처럼 불안을 조성하는 꼴이니 말이다. 현재로선 소비자이자 감시자인 시민들이 눈을 크게 뜨는 것 빼고는 딱히 '삼성 공화국'의 폐해를 막을 방법이 없어 보인다. 

 

한편 삼성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대한민국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려는 오만불손함이 아닐 것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선진국 기업들의 사회환원 소식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대학의 서열화가 아닌 진정한 학문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또 글로벌 기업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무노조 경영 원칙을 폐기해서 노동자의 인권에도 관심을 기울어야 함은 당연하다. 시민이 삼성 소비자이기도 하지만 삼성 소비자가 또한 대한민국 시민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시민이 늘 순진하고 나약한 존재만이 아니라는 것은 도도한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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