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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 0%, 양심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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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왜곡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률이 0%에 근접해 가고있다. 교학사 교과서를 비롯한 2종 교과서로 비교수업을 할 계획이라던 전주 상산고도 재학생과 학부모, 동문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혀 결국 한국사 교과서 선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참고서의 대명사로 불리는 <수학의 정석> 저자인 홍성대씨가 설립한 학교로도 더 유명한 전주 상산고가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철회할 경우 오는 3월 개교하는 경기 파주의 한민고만이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유일한 학교로 남을 전망이다. 

 

전국 고등학교들이 어느 출판사 교과서를 채택했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이 전국 2300여 고등학교 중 800여 학교를 대상으로 표본 조사한 결과 처음에는 10여곳 남짓한 고등학교들이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지만 학생과 학부모, 동문은 물론 시민단체의 거센 항의로 채택 철회가 속출하면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률이 거의 0%에 근접해가고 있다는 사실은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은 물론 보수 언론에서도 교학사 교과서 채택 철회 사태를 이념 논쟁으로 몰고있어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 0%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친일·독재 미화는 물론 역사적 사실 관계마저 왜곡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 0%가 가지는 의미를 따져보기 전에 우리보다 먼저 교과서 검정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도 타산지석의 교훈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일본의 대표적 극우 교과서인 지유사 역사 교과서 

 

일본 지유사 교과서, 독도는 대나무가 무성한 섬이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교과서인 지유사 역사 교과서는 독도를 '대나무가 무성하던 섬'으로 기술하고 있다고 한다. 누가 봐도 잘못된 기술임을 알 수 있지만 지유사 교과서는 독도의 일본식 이름인 '다케시마'를 글자 그대로 해석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오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지유사 교과서는 독도를 일본 땅으로 우기는가 하면 과거 일본의 침략 전쟁을 제국주의로부터의 아시아 해방 전쟁으로 미화하는 등 일본 극우 진영의 논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런 엉터리 내용 탓에 일본 고등학교의 지유사 교과서 채택률은 1%를 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본 정치권의 우경화 흐름과 맞물려 또 다른 극우 계열인 이쿠호사 역사 교과서 채택률이 4%를 넘기면서 일본내 양심적인 시민단체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1949년 교과서 검정제도를 도입하면서 교과서를 통제하려는 정부와 이를 막으려는 시민단체의 갈등이 일찍부터 불거졌다. 특히 2001년 극우 단체인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가 후쇼사 교과서를 내놓으면서 일본내 양심적인 시민단체들의 교과서 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교과서넷'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새역모를 비롯한 극우 단체의 지원을 받는 교과서가 나올 때마다 전국적으로 불채택 운동을 전개해 극우 교과서의 확산을 막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후쇼사 등 일본 극우 교과서의 채택률은 2009년 당시 1.7%에 머물렀다. 우리나라 교과서 운동 단체인 '아시아의 평화와 교육 연대'도 일본 교과서넷과 긴밀하게 정보를 주고 받으면서 극우 교과서의 확산을 막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 중학교의 극우 교과서 채택률은 4%를 넘으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새역모 내 내부 분열로 후쇼사와 후쇼사 자회사인 지유사의 교과서 채택률은 감소하고 있지만 또 다른 극우 교과서인 이쿠호사 교과서가 선전하면서 일본 극우 단체의 목표인 채택률 5%에 근접해 가고 있다. 게다가 2006년 교육기본법 개정, 2008년 학습지도요령 개정 등 일본의 교과서 채택 환경이 극우 교과서에 유리하게 변하고 있어 '교과서넷'을 비롯한 일본 내 양심적인 시민단체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더욱이 아베 총리가 우경화를 주도하고 있어 교과서 운동 단체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끊임없는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은 각 지역 교육위원회가 8월 31일까지 중학교 교과서 채택 작업을 마무리해 그 결과를 문부성에 보고하는데 선정된 교과서는 4년간 사용된다.

 

▲ 교학사가 출간한 한국사 교과서 

 

깨어있는 양심의 승리

 

이번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 0% 육박은 한마디로 '깨어있는 양심의 승리'로 표현할 수 있겠다. 친일과 독재 미화는 물론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하는 등 부실한 내용으로 점철된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면서 시민단체가 주도적으로 반대 운동을 시작했지만 일선 고등학교의 교과서 선정이 시작되면서부터는 학생과 학부모, 동문들이 주도적으로 나섬으로써 선정 취소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교내 대자보를 통해 교학사 교과서 채택의 부당성을 알리고 있고, 학부모와 동문들은 항의 전화와 학내 게시판을 통해 불채택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오늘 아침 경향신문에 따르면 전주 상산고 동문들은 단식 농성과 카네이션 시위를 통해 '후배들의 바른 역사관을 지켜달라'며 역사 교과서 재선정을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학교측도 한국사 교과서 선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니 부디 깨어있는 양심의 소리를 겸허히 수용하는 결정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문제는 올해가 아니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정부와 교육당국은 오류 투성이인 교학사 교과서를 살리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공세를 취하고 있다.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오류 수정을 허용해 주는가 하면 여론의 저항을 엉뚱하게 이념 논쟁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여기에 보수 언론까지 합세함으로써 향후 교과서 논쟁은 더욱 치열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에서도 교학사 교과서 논란이 단순히 올해의 문제만이 아닐 것임을 예고했다. 역사 후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장본인이기도 한 박 대통령은 이번 교학사 교과서 논란을 보수 언론처럼 이념 논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현정부 들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역사 다시 쓰기가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음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오류 투성이인 교학사 교과서의 검정 통과는 물론이거니와 정치적 편향성이 심각해 여론의 반대가 많았음에도 유영익 교수의 국사편찬위원장 임명을 강행한 것도 노골적인 역사 다시 쓰기의 단면이었다. 어제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 선정 결정을 변경한 학교에 대해 특별조사를 착수한다고 밝힌 것을 보면 결코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지 싶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년 동안 그래 왔던 것처럼.

 

 

마지막으로 교학사측도 이번 교과서 선정을 통해 나타난 학생과 학부모, 시민사회의 여론을 겸허히 받아들이길 바란다. 다양성 운운하면서 이번 사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모양인데, 다양성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작동 원리인 것은 맞지만 역사적 사실 왜곡과 친일·독재 미화까지 '다양성'으로 부른다면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출판사로써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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