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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책 소개] 어느 지식인의 일기를 통해 본 전쟁의 내면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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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앞에서/김성칠(1913~1951)/1993/창작과 비평사

 

1950 6 25

 

낮때쯤 하여 밭에 나갔더니 가겟집 주인 강군이 시내에 들어갔다 나오는 길이라면서 오늘 아침 38전선에 걸쳐서 이북군이 침공해와서 지금 격전중이고 그 때문에 시내엔 군인의 비상소집이 있고 거리가 매우 긴장해 있다는 뉴스를 전하여주었다.

 

마의 38선에서 항상 되풀이하는 충돌의 한 토막인지, 또는 강군이 전하는 바와 같이 대규모의 침공인지 알 수 없으나, 시내의 효상을 보고 온 강군의 허둥지둥하는 양으로 보아 사태는 비상한 것이 아닌가 싶다. 더욱이 이북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서 이른바 호소문을 보내어온 직후이고, 그 글월을 가져오던 세 사람이 38선을 넘어서자 군 당국에 잡히어 문제를 일으킨 것을 상기하면 저쪽에서 계획적으로 꾸민 일련의 연극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평화적으로 조국을 통일하자고 호소하여도 듣지 않으니 부득이 무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그 호소의 내용은 세상에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니 다른 것은 모르거니와 신문지상의 전하는 바에 의하면, 대통령 이승만 박사를 비롯하여 이남의 정계 요인 아홉 사람을 제외하고 통일하자는 것이라니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대통령 이하 아홉 사람의 정치인에게 큰 오류가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별개 문제이다. 이를 바꾸어 생각한다면, 이남에서 통일을 제안하면서 김일성 수상 이하 이북의 정계 요인들을 모두 제외하고 하자면, 글쎄 이북에선 이를 들을 법한 일인가. 이런 제안을 해놓고 이북에서 듣지 않는다고 소위 북벌을 한다면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들 국민은 수긍할 수 있을 것인 것.

 

그러나 이북의 소위 조국통일 호소에 대한 이남의 처사도 온당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넘어온 사람은 곧 되돌려보내고 그 제안의 불합리함을 천하에 밝히는 것이 떳떳한 일이 아닐런가. 제안의 내용은 우물쭈물 비밀에 붙이고 이른바 호소문을 가져온 사람들을 잡아서 전향을 시키고 방송을 하고 하니, 아무리 억지의 제안을 가져왔대도 사자의 형식으로 월경해온 사람들을 잡아서 족치는 것이 도리에 어긋남이며, 그들이 대한민국에 넘어와 보고 감격한 나머지 이북을 배반하기에 이르렀다는 발표는 좀 지나치게 어수룩한 수작이고, 국민은 또 어떠한 교묘한 고문을 썼기에 일껏 결심하고 넘어온 사람들로 하여금 그토록 쉽사리 변절하게 하였을까 하고 다시 한번 생각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여튼 쌀값이 소두 한 말에 3천 원의 고개를 바라보게 되고 민생고가 극도에 빠진 오늘날 이 닥쳐온 전란을 백성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인가. -<역사 앞에서> 중에서-

 


 

 

성인이 되어서도 일기를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일기를 쓰면 좋겠거니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아쉽게도 일기를 통해 떠오르는 추억들은 그리 달갑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워야 할, 게다가 예민하고 감수성이 넘쳐난데다 말 못할 비밀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나이에 일기가 검열(?)의 대상이었다면, 검열받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왔을 때 나만의 일상을 다시 문서로 남기기보다 아예 때려치워야겠다는 욕망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즉 교육을 가장한 가장 비교육적인 행태에 일기가 갖는 여러 장점들은 무시되고 왜곡되어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이가 적지 않거니와 몇몇 인사들의 일기는 당시 역사를 들여다보고 재조명하는 중요한 사료가 되기도 한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도 그렇거니와 백범 김구의 <백범일지> 또한 역사의 순간을 관통한 소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멀리는 <안네의 일기>도 있다. 나에게 저장된 지식이 얕아서이지 어디 이들 뿐이겠는가!

 

 

 

위에서 언급한 일기들보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의 격랑을 헤치고 살았던 어느 지식인의 일기를 읽는 순간 한국 현대사의 가장 첨예한 대립이 있었던 시절의 풍경들이 마치 사진 속 그것처럼 생생하게 재생된다. ‘한 사학자의 6·25 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김성칠 선생의 일기인 <역사 앞에서> 1945 12월부터 1951 4월까지의 기록이다. 일기 속 해방공간과 전쟁의 생생한 묘사는 정부 공식문서와 학계의 역사논문으로는 밝히기 어려운 또 다른 진실을 담고 있다. 게다가 일기 속 내용들이 2013년 대한민국과 빼닮아도 너무 빼닮았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하지만 선생의 일기 속에서 부끄러운 오늘의 자화상이 그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거리에는 꽃전차가 화려하고 광복군과 소년군의 행진이 장엄하고 유량한 나팔소리에 울려나오는 애국가의 멜로디가 이때까지 일본 일색의 가두데모만 보아오던 나에게는 눈물겹도록 기쁜 현상이지만 한편으로 인민공화국 측과 한국민주당 측이 서로들 민족반역자라 욕하고 죽일놈 살릴놈 하는 격렬한 삐라를 돌리는 것이 마음 아픈 노릇이다. –‘1945 12 19일 일기중에서-

 

뿐만 아니라 저자가 재직했던 서울대 문리대가 북한에 점령되었을 때와 국군이 서울을 수복한 이후의 생생한 상황들은 좌우 대립의 시대적 아픔을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있다. 한편 언론에 대해서 언급한 ‘1946422일 일기는 저자가 2013년 대한민국의 언론을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소름이 돋는다.

 

신문기사의 허위보도라고 하면 반드시 어떠한 사실을 날조한 경우에만 한하지 않고 어떠한 사건의 연속 중에서 일부분을 고의로 묵살해버린다거나 그와 반대로 강조해서 표현하는 것은 독자의 판단을 어긋나게 함에 있어서 허위보도와 조곰도 다를 것 없을 것이다. –‘19464 22일 일기중에서-

 

그러면서 저자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과 다툰 일이 있을 때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한때 가슴이 후련해질 수 있다고 우리들의 생활을 파멸로 이끄는 어리석음은 감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리 괴로운 순간에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이그러진 얼굴을 사진박지 않으리라.’는 표현에서 저자의 따뜻한 심성이 그대로 느껴진다.

 

저자의 일상을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를 들여다보는 동안 최근 몇 년 새 첨예한 대립과 대결관계로 일관해온 남북관계의 해법도 보이는 듯 하다. 아니 꼭 해법은 아니더라도 남과 북이 공생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서로를 바라보는 적개심과 경멸과 분노의 시선부터 새롭게 해야 하지 않을까. 아쉽게도 일기의 감동을 모두 나눌 수는 없는 일이고 마지막으로 저자가 전쟁 중에 본 북한군을 묘사한 대목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들은 비록 억센 서북 사투리를 쓰긴 하나 우리와 언어·풍속·혈통을 같이하는 동족이고 보매 어쩐지 적병이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디 멀리 집 나갔던 형제가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오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들이 상냥하게 웃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적개심이 우러나지 않는다.

이건 내가 유독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심이 적기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어제 본 국군과 이들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다르다면 그들의 복장이 약간 이색질 뿐, 왜 그 하나만이 우리 편이고 그 하나는 적으로 돌려야 한단 말이냐. 언제부터 그들의 사이에 그렇듯 풀지 못할 원수가 맺히어 총검을 들고 죽음의 마당에서 서로 대하여야 하는 것이냐. 서로 얼싸안고 형이야 아우야 해야 할 처지에 있는 그들이 오늘날 누굴 위하여 무엇 때문에 싸우는 것이냐. –‘1950628일 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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