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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능지처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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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지처참/티모시 브룩/너머북스/2010년

 

1904년 가을, 왕 웨이친(王維勤)을 처형장으로 데리고 가는 행렬은 베이징 성내에서 시작해 선무문(宣武門)을 지나 남쪽 ‘채소시장 입구(菜市口)’로 알려진 큰 시장 교차로까지 이어졌다. 중년 남자인 죄수는 북양군(北洋軍) 분대에 속해 있던 병사들과 함께 방책이 쳐진 수레를 타고 도착했다. 형부(刑部)에서 파견한 관리들도 이 행렬과 함께했다. 이 쌀쌀한 아침, 형부 관리들의 임무는 날이 밝기 전 교차로 옆에 미리 설치해 놓은 차양 아래에서 죄수 처형 절차를 감독하는 일이었다. 죄수를 처형하기에 앞서 형부 관리 한 명이 그의 범죄를 청(淸) 왕조의 대법전인 《대청율례(大淸律例)》에 정한 죄목과 언어를 사용하여 읽었다.

 
청 정부가 법의 테두리 내에서 내린 가장 가혹한 형벌을 보려고 모여든 병사 무리와 구경꾼들 앞에서 왕 웨이친의 처형이 시작되었다. 병사 두 명이 바구니와 처형할 때 쓸 칼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다른 병사들은 죄수의 몸 상체가 사형집행인-즉, 회자수(劊子手)-과 그의 조수에게 완전히 드러나도록 죄수의 옷을 벗기고 변발을 삼각대에 묶었다. 회자수가 죄수의 가슴 부위부터 시작해 이두박근과 허벅지 살을 차례대로 조각조각 도려내기 시작했다. 살을 저미는 작업 도중에 회자수가 신속한 손놀림으로 왕씨의 심장을 단번에 찔러 목숨을 끊었다. 그러고 나서 계속해서 차례차례 왕씨의 사지를 절단했는데, 처음에는 팔목과 발목, 그다음으로 팔꿈치와 무릎, 마지막으로 어깨와 엉덩이 부분을 잘라내었다. 숙련된 회자수는 죄수의 신체 부위를 서른여섯 개 남짓-이 숫자는 정해진 것이 아니다-으로 나누어버렸다. 회자수가 임무를 다 끝내고 나더니 관리들 쪽으로 몸을 돌려 소리 지른다. “샤런러! 사람을 죽였다!”  


조수가 칼을 모아 조심스럽게 바구니에 다시 집어넣자, 기다리던 힌 두루마기를 입은 장의사들이 앞으로 나와 신체 조각들을 모았다. 그것들을 채소시장 남서쪽에 있는 공동묘지로 가지고 가서 비석 없는 무덤이라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처형 조항에는 대중의 조롱거리로 삼도록 참수된 죄수의 머리를 저잣거리에 걸어놓을 수 있다는 보조 규정이 있지만, 왕씨의 판결문에서는 이 마지막 모욕은 면제받았기에 장의사들은 그의 머리도 가져갔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땅에 흘린 피뿐이었고, 이것마저 곧 먼지에 덮여 그 흔적조차 사라질 것이다. 관리 한 무리와 수행원들이 회자수와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성내로 돌아갔다. <중략>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서구의 학문적 관심은 근대 초기에 중국 형벌의 합리성과 일관성을 강조하는 것으로부터 18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잔혹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현저하게 변화해 왔다. 17세기에는 일반적으로 곤장과 칼을 관료가 국가를 대신해 사용할 수 있는 중국의 대표적 형벌로 간주했으나, 18세기 중반에 오면 곤장이나 채찍으로 매질하는 형벌을 전제 정부의 결정적 표지라고 여겼다. 19세기 초에 오면 중국의 형벌과 사법 절차는 일반적으로 ‘동양적’ 전제주의의 결과라고 여겼으며, 잔혹성이 팽배한 사회의 ‘퇴보적’이고도 ‘반(半)야만적’인 본성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그러한 평가가 시각자료와 논문 형식으로 표현되었을 때, 공포와 혐오감 같은 상당히 강력한 감성적, 미학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능지처참> 중에서-

 


읽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날 정도로 잔인한 이 책의 원제는 <중국의 잔혹성과 서구의 시선>이다. 제목에서 짐작하겠지만 '서구의 시선'이란 곧 '편견'을 의미한다.

 

'편견(偏見, Prejudice)'의 사전적 의미는 '공정하지 못하고 한 쪽으로 치우친 사고나 견해'를 말한다. 상대방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기 전에 형성된 나쁜 감정이 '편견'이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왕따나 따돌림도 개인적인 편견이 집단화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국가 사회에서 집단화된 편견은 인종 차별이나 민족 차별과 같은 극단적인 국수주의 경향으로 나타난다. 문제는 '편견'이 불충분하고 부정확한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선입견이 신념으로 굳어진 상태가 '편견'인 것이다. 

 

'편견'의 가장 큰 특징은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좀처럼 출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쟁이나 재해와 같은 사회적 혼란 상황이 지속되면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사회 병리현상 중 하나가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도 어릴 적 보았던 유대인 상인에 대한 부정적 기억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최근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에서 극우정당이 예상외의 높은 지지를 받는 이유도 사회적 혼란 상황에서 나타난 '편견'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 성숙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언론을 장악한 권력의 선동과 여론조작으로 집단적인 '편견'이 형성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예에서 자유롭다고 자신할 수 없을 것이다. 

 

삼천포로 빠지 발걸음을 다시 돌리자면 20세기 초 중국 또는 동양의 '야만성'을 상징하는 코드가 되어버린, 동양인을 바라보는 서양인의 잔혹한 편견이 형성된 왕 웨이친의 능지처참 장면은 이 사건과 조우한 어느 서양인의 카메라에 잡히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문제의 장면은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가 에로티즘을 다룬 책 <에로스의 눈물>의 실렸다고 한다. 

 

<능지처참>은 단순히 서양인의 동양에 대한 편견만 다루지는 않는다. 형벌의 역사를 통해 사형 제도가 가지는 야만성과 비합리성을 더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득 욕에도 할 수 있는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세기 말 개화파 지식인이었던 김옥균은 상하이에서 암살당했지만 그 시신을 국내로 송환해 다시 육시(戮屍)의 형벌을 내렸다고 한다. 육시가 무엇인가. 죽은 시신을 무덤에서 파내어 여섯 조각으로 다시 참형을 가하는 형벌이다.

 

"저런 육시를 헐 놈들, 그놈들을 관가에 고발을 허지 그냥 내버려뒀더란 말유?" -박완서의 역사소설 <미망> 중에서-


 

허접한 글이지만 참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강여호를 만나는 방법은 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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