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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현대인에게 타인의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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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의 부고/조해진/2012년

 

급격한 산업화와 현대화의 길을 걸었던 1970년대 일본에서는 외부와 연락을 단절한 채 집에만 틀어박혀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텔레비전에 몰두하는 젊은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나친 자학증세나 우울증 증상을 보이기도 했으며 부모 의존적인 일상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런 젊은이들의 독특한 생활태도는 1990년대 들어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2000년대 들어서는 노령화와 함께 심각한 노동력 부족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히키코모리'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번역해도 결코 낯설지 않은 용어, '은둔형 외톨이'가 바로 히키코모리이다.

 

현재 약 20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일본의 히키코모리가 대부분 남성이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장으로서의 역할과 사회참여에의 실패가 맞물려 좌절감에 빠져들고 타인과의 소통을 거부한 채 은둔함으로써 사회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가정내 폭력으로 해소하려는 병리현상이 히키코모리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일본만의 특이현상으로 이해돼 왔지만 일본의 산업화와 현대화의 전철을 밟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들어 은둔형 외톨이는 점차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아직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2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니 조기에 원인 분석을 하지 않으면 일본처럼 사회문제화 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참여의 좌절과 공포에서 비롯된 타인과의 관계 설정 실패라면 적극적인 사회참여에도 불구하고 타인과의 정상적인 관계 설정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조해진의 소설 <홍의 부고>에서 주인공 '안'이 채권추심 담당 직원이라는 설정도 타인과의 관계 설정에 실패한 또 하나의 외톨이를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적응에 실패한 경우라면 안은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지만 가해자적 입장에서 오는 심리적 외톨이의 유형이다. 노동집약적 형태의 과거 산업이 구성원간 협업이 전제된 분업을 강조했다면 기계화, 전자화로 대표되는 현대 산업은 기계운용능력과 계량화된 실적에 의해 개인이 평가되고 그 평가는 그대로 개인의 사회적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시스템에 의해 개인주의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피아(彼我)의 끈끈한 관계는 전통사회의 고리타분한 유물로 취급되기 일쑤다. 안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소설은 독특한 구조, 반전을 통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애매모호하게 만든다. 즉 누군가의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던 시점도 꿈이었고,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를 쫓아 미궁을 헤매는 안의 행적 또한 꿈이었던 것이다. 이런 구조는 정형화된 현대인의 생활패턴에 대한 상징적 장치임과 동시에 현대인에게 무의미했던 타인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눈을 감았다. 이제 곧 어딘가에서 전화벨이 울릴 것이고 안은 홍의 부고를 들으며 잠에서 깰 터였다. 아직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 누구도 만나지 않은 이른 아침에. 잠시 후, 안은 천천히 눈을 떴다. -<홍의 부고> 중에서-

 

채권추심 담당 직원인 안이 개떼에게 쫓기는 꿈을 꾸고 그때 문득 떠오른 '먼 옛날 세상 끝에 도착한 방랑자가 더이상 갈 곳이 없자 하늘을 찢고 그 밖으로 빠져 나갔다는 이야기'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현재 상황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직업 특성상 타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철저히 배제한 채 합법적인 가해자의 입장에 선 안이 겪는 정신적 병리현상은 무미건조한 현대인의 자화상일 것이다. '하늘을 찢고 밖으로 나간 방랑자'는 개떼에게 쫓기고 있는 주인공 안이기도 하지만 안과 대척점에 있는 타인의 현실이기도 하다.

 

검은 개떼에 쫓기다가 유리가 깨진 전화부스를 발견하고는 정신없이 그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꿈을 꾸고 있었다. 개들은 끈적끈적한 침을 질질 흘리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채 맹렬하게 짖어댔다. 수화기를 쥐고 있던 안의 두 손은 경련하듯 떨렸고 갑작스러운 요의로 다리까지 후들거렸다. 여보세요? 거, 거기 누구 없어요? 마침내 신호음이 지나가고 통화가 연결되어 안이 다급하게 물었을 때, 개들은 순식간에 뿌연 안개 속으로 삼켜지듯 사라져갔다. 개떼뿐 아니라 가로등과 깨진 전화부스와 그때껏 온 힘을 다해 쥐고 있던 수화기도 하얗게 지워지면서 안은 갑자기 텅 빈 들판에 혼자 서 있게 되었다. -<홍의 부고> 중에서-

 

소설은 익명성의 현대사회를 나타내듯 이름은 없고 성(姓)만 등장한다. 한편 제목이기도 한 '홍의 부고'는 현대인이 체감하고 있는 나와 타인의 거리감이기도 하다. 과거 친구였을 수도 있는 안과 홍의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태어나서 삶을 마감하기까지의 심리적 시간이 바로 현대인에게 처해있는 타인과의 실제적인 거리감인 것이다. 홍의 부고를 접한 안은 문상을 가기 전 가물가물한 홍과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추적에 나서보지만 홍의 실체는 갈수록 미궁에 빠지고 만다. 오히려 안은 홍의 실체를 추적하는 동안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주변인들의 다양한 삶의 형식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홍의 실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보게 되는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뉴스는 안이 꿈 속에서 쫓기던 개떼를 연상시킨다. 익명성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공포. 그러나 현대인들은 그 공포를 마치 소모품처럼 나누어 가진다.

 

살인범들의 수법 자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단순했다. 남자든 여자든 일단 표적이 되면 인적 드문 곳으로 끌고 가 각목과 쇠파이프로 무작정 패는 것. 그게 다였다. 살점이 너덜거리고 뼈가 부러지고 장기가 훼손되어 마침내 희생자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쉬지 않고, 아마도 끈적끈적한 침을 흘리기도 하면서. 대여섯명의 건장한 남자들로 알려진 이들은 개인적 원한이나 사회에 대한 불만을 비치지도 않는데다가 그 수법 또한 잔인하고 비전문적이어서 일부 범죄 심리학자들은 이들이 일종의 취미처럼 살인을 즐기는 거라고 진단합니다. YTN 뉴스, 최…… -<홍의 부고> 중에서-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그저 책읽는 재미에만 푹 빠져있는 필자에게 저자의 메세지를 파악하기란 여간 쉬운 소설이 아니다. 다만 안이 홍의 실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존재를 알아간다는 것, 타인의 고통을 흐릿하게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저자가 고독한 현대인에게 던져준 희망의 메세지는 아닐까. 추적하면 할수록 미로 속에 빠져드는 홍의 실체. 결국 안은 지금까지 알게 된 홍이 진짜였고 전부였음을 인정한다. 또 안은 홍이 안치돼 있는 K구 S병원에 가는 도중 자신이 TV 속 연쇄살인범들에게 쫓기는 환상을 경험하고는 나와 나로 인해 겪게 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세상 끝에 도달하여 하늘을 찢고 그 너머로 사라진 방랑자는 어떻게 됐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인생의 모든 진리를 터득한 현자가 되었을 수도 있고, 새까만 어둠 속에서 눈이 먼 것과 다를 바 없이 매 순간을 영원처럼 살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의 삶이었든 방랑자의 가슴속에 쌓인 고통과 후회의 총량은 똑같을 거라고 안은 생각했다. -<홍의 부고> 중에서-

 

아(我)의 실체는 피(彼)의 존재를 통해서만 확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의 몰인간적 시스템은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의도적으로 타인의 존재를 거부하도록 부추긴다. 사회참여에 실패한 은둔형 외톨이도, 군중 속 한복판에서 외로이 서 있는 심리적 외톨이도,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고독함에서 비롯된 고통과 공포는 별반 다를 게 없을지도 모른다. 소설 <홍의 부고>는 현대사회의 병리현상을 치유하려 들지는 않는다. 다만 홍의 존재를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지독한 질병의 실체가 의도적이든, 심리적이든 타인과의 격리된 삶에서 비롯되었고 그런 현대사회의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 뿐이다.

 

최근 현역 프로농구 선수가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을 훈육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했다고 해서 형사입건된 사건을 두고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필자가 관심은 사건 자체보다는 피해자로 지목된 몇몇 학생의 부모들이 이 농구선수에게 오히려 고맙다는 의견을 피력했다는 것이다. 나와 타인 사이에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우리사회가 여전히 따뜻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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