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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따따부따

시나리오 쓰는 언론, 국민들에겐 "웃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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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일을 하는 나에게 출근 시간은 또다른 고역이다. 그나마 일요일 저녁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집중되어 있어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일주일간의 스트레스를 웃음으로 어느 정도 해소하고 출근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몇 주는 일요일에도 웃을 일이 없어졌다. 어제는 매주 즐겨보던 '1박2일'도 결방되었고 5주째 자취를 감춰버린 개그 콘서트 홈페이지에는 '천안함 침몰 사고로 인한 편성 조정으로 4월25일 일요일에는 <개그콘서트>가 방송되지 않습니다. 이점 시청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라는 팝업창만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지난 3월26일 발생했던 천안함 침몰 사고가 벌써 한달째 접어들고 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사고 원인도 가려내지 못한 채 꽃다운 청춘을 조국에 바친 46명의 젊은이들은 이승과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다. 구사일생으로 생존한 장병들도 그날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전국민적 애도 분위기 속에 KBS를 비롯한 MBC, SBS 등 방송사들도 이런 분위기를 주도하려는 듯 예능 프로그램들을 결방시키고 있다. KBS의 '개그 콘서트', '해피선데이', '뮤직뱅크', SBS의 '웃찾사', '인기가요', '일요일이 좋다' 등이 결방되고 있고 MBC는 노조파업과 겹치면서 상당수 예능 프로그램들이 다큐, 교양프로그램의 재방으로 대체되고 있다.

그러나 예능 프로그램의 결방이 장기화되면서 시청자들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 젊은 장병들의 순국과 유가족들의 슬픔에 등을 돌리는 이가 몇이나 될까? 애도 분위기는 정부나 언론이 주도해서 형성된 게 아니다. 천안함 침몰 사고 직후 국민들 한명 한명이 그들의 실종과 죽음을 내가족, 내동료의 그것으로 느끼는 순간부터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개개인은 사회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슬픔을 온몸으로 보듬은 채 또다른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예능 프로그램은 이런 소시민들에게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과하면 넘친다고 했다. 지나친 프로그램 편성 변경은 오히려 애도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벌써부터 시청자들은 결방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언론의저의를 의심하는 글들을 올리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결방에 대한 기준도 애매모호하니 시청자들의 의구심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언론은 제 역할에 충실했나?
천안함 침몰 사고 이후 우리 언론이 한 일은 고작해야 추측성 기사로 시나리오를 쓴 것 뿐이었다. 두동강이 난 채 바다에 잠겼던 천안함 함미와 함수가 인양된 이후에는 사고의 북한 관련성 보도와 기사만 연일 양산해 내고 있다. 일부 언론은 사고 직후부터 북한의 공격에 의한 침몰을 규정사실화하고 있다. 물론 이런 추측성 보도가 남발한 데에는 군당국과 정부의 지나친 정보 비공개와 자고 일어나면 되집히는 해명이 한 몫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언론의 기본은 사실(fact)에 입각한 기사와 보도다. 물론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의 공격이라면 북한은 국제사회의 엄중한 제재를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아직은 어떤 증거도 없지 않은가! 대부분의 언론들은 심증만으로 사고원인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아무리 군당국이 정보 공개를 꺼린다지만 그래도 언론은 일반 국민들보다는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테고, 더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 수 있을 텐데, 막상 쏟아내는 기사들은 누리꾼들의 블로그 기사를 앞서가지 못한다.

정부의 방송장악을 위한 칼춤이 클라이막스에 접어들고 있다. 언론의 도를 넘은 애도 분위기 조성이 큰집의 압력인지, 아니면 알아서 기는 기회주의적 행태인지 시청자들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언론의 지나친 과욕(?)이 오히려 전국민적 애도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애도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세력은 또 있다.
언론의 과욕(?)도 문제지만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에서는 젊은 장병들의 희생 앞에서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다가올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은 이번 사고의 명쾌한 진상과 원인규명보다는 선거에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아니 노골적이다.

한쪽에서는 한물간 북풍을 생각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정치 쟁점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선거홍보용 포스터에 넣을 모양인지 조화 앞에서 사진도 찍고 싸이질 하는 양반들도 있다. 오지랖 넓던 대통령도 군당국이 제대로 보고를 안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 평소처럼 발빠른 행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기준도 없는 몇몇 예능 프로그램을 결방한다고 해서 애도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언론과 정치권은 구시대적인 애국주의 선동에 에너지를 낭비할 게 아니라 천안함 침몰의 명확한 원인 규명에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젊은 장병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고 유가족들의 마르지 않는 눈물을 거두어 주는 길이다. 

"죽는다는 것, 그것은 바람 속에 알몸으로 서 있는 것이며 태양 속으로 녹는 것 외에 무엇이리오?
또 그것은 호흡이 멈춰진다는 것, 그 끊임없는 조수로부터 호흡이 자유롭게 된다는 것, 솟아오르고 퍼지며 부담없는 '신'을 찾는다는 것 외에 무엇이리오?

다만 그대 침묵의 강으로부터 마실 때 그대 진실로 노래하리라.
또 그대 산정에 이르렀을 때, 그때서야 그대 오르기 시작하리니.
그러므로 대지가 그대 손발을 요구할 때, 그때 그대는 진실로 춤추게 되리라." - 칼릴 지브란의 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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