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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30년대 흉가에 투영된 21세기 싱글맘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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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최정희/1937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아빠나 엄마 중 한 명과 미혼 자녀로 구성된 가구 즉 싱글맘, 싱글대디 가구가 159만에 이른다고 한다. 10년 전에 비해 47만 가구가 늘어난 수치로 이 중 싱글맘 비중이 78%라고 하니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또 하나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가구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여기에 국가의 정책적 지원도 전통적인 가족 개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싱글맘, 싱글대디들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직도 여성의 사회진출이 버거운 현실을 감안한다면 싱글맘을 위한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싱글맘이 느끼는 가장 큰 사회적 장벽은 무엇일까. 싱글대디와 마찬가지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회적 편견도 불편하지만 싱글맘이 느끼는 가장 시급한 문제는 경제적 부담이라고 한다. 2009년 보건복지가족부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싱글맘의 62.8%가 가장 큰 어려움으로 경제적인 문제를 꼽았다고 한다. 뒤를 이어 주거문제와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감이 싱글맘이 느끼는 현실적 어려움으로 조사되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이들 항목도 경제적 문제에 해당한다. 싱글맘 가정이 1년 안에 빈곤층을 전락할 확률이 13.1%로 싱글대디 가정의 4.3%보다 훨씬 높다는 조사도 있고 보면 싱글맘에게 경제적 문제의 해결이 얼마나 시급한가를 보여준다. 

 

 

1937년 『조광』에 발표된 최정희의 소설 <흉가>에서 21세기 싱글맘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을 보았다면 지나친 상상력이랄 수도 있겠지만 실제 싱글맘에게 처해진 환경이 이보다 못하겠는가 하는 생각 또한 드는 게 사실이다. 소설은 신문사 여기자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 '나'가 새로 얻어든 집이 흉가라는 말에 겪게 되는 정신적 번민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 '나'가 겪게 되는 공포는 바로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요즘으로 치면 싱글맘이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어머니까지 모시고 있으니 주인공 '나'가 겪을 정신적 압박감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지 싶다. 이런 '나'에게 비록 월셋방이기는 하지만 방 셋에 부엌 있고 마루 있고 뜰이 넓은 집으로의 이사는 그야말로 부푼 희망의 시작이다. 새로 들 집의 묘사는 이런 '나'의 심리상태를 대신해 준다.

 

빈 집이라 계약만 잘 되면 곧 옮길 수 있을 것이 기뻐서 나는 집주름이 집주인을 데리러 비오는 산모퉁이를 돌아간 뒤에 대문 밖에 우산을 받은채 우두커니 섰다가 집 울타리 밖을 몇번 휘이 둘러보았다. 앵두나무, 살구나무, 감나무가 집을 삥 둘러싸고, 바로 집 뒤 가까이 산이 있고 좋은 바위도 군데군데 엎드려져 있었다. 앵도는 봉오리가 졌고, 살구나무, 능금나무엔 물이 오르고, 감나무만이 아직 거먼 대로 출출해 보였으나 오래지 않아서 잎이 무성할 것 같았다. -<흉가> 중에서-

 

'나'의 희망은 이내 공포로 돌변한다. 새로 든 집이 흉가라는 솥 붙이는 늙은이의 말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사를 하고 얼마 지나 병원으로부터 폐병 진단까지 받았다. '나'는 오히려 그 집이 흉을 가졌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 집이 진짜 흉가라면 셋돈이 웬만큼 밀린다고 하더라도 심하게 굴거나 쫓아내거나 하는 일이 없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로만 들었던 흉가의 미친 안주인이 꿈에 나타나면서 '나'는 알수 없는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공포의 이면에는 '나'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겪게 되는 현실적, 경제적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폐병이란 진단을 받고 그것이 겁나서 집을 들던 날 늙은이가 한 이야기를 생각해 내고 또 그날 밤으로 당장 꿈까지 꾼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으나 실상은 내가 폐병이란 의사의 진단을 받던 그 즉시로는 도무지 나는 내 병을 염려한 일이 없고 도리어 우리집 식구들의 생활만이 걱정되었는데 정말 그날 밤 내가 긴 머리채를 감아쥐고 미친 안주인이란 그 여자에게 실컷 얻어맞던 꿈을 꾸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힘을 탁 잃고 말아버렸다. -<흉가> 중에서-

 

주인공 '나'가 정작 무서워 하는 것은 새로 든 집이 흉가라는 소문보다는 월세도 버거운 경제적 현실의 압박감 때문이다. 결국 그 집에서도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이 흉가에 대한 공포로 나타난 것이다. 소설은 '나'가 겪는 심리적 공포 상태를 여성 작가다운 섬세함으로 그려 나간다. 집을 돌아보던 날 그렇게 운치있던 감나무의 그림자는 꿈에 본 여자의 조화로 보이고 처음으로 갖게 된 내 방 탈바가지는 마치 움직이는 물체처럼 눈을 부릅뜨고 입을 씰룰거리며 '나'를 바라본다. 심지어 해가 떠오른 하늘마저도 너무 무섭게 파래 공포로 다가온다.

 

 

나는 높이 뛰노는 가슴을 진정하면서 방안을 휘적 둘러보았으나 거기는 무서움을 덜게 해줄 아무것도 없었다. 테이블과 의자와 책과 탈바가지[가면]만이 서쪽 창에 비친 달빛으로 해서 어슴푸레하게 보여질 뿐이었다. 내 눈은 점점 해등잔같이 동그래서 서쪽 창에 서린 감나무 그림자만 바라보았다. 그것이 바람이 불적마다 설렁설렁 흔들거리는 것이 몸에서 진땀이 빠짝 돋도록 무서웠다. 똑 나를 때리던 꿈에 본 여자가 그 문 밖에서 조화를 부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달빛이 원망스러웠다. -<흉가> 중에서-

 

결국 흉가에 대한 공포는 폐병과 겹치면서 시름시름 앓게 되는 '나'는 집과 돈과 우리집 생활을 생각하고 또 주름살 잡힌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차마 병명을 말하지 못한 채 벽쪽으로 돌아누워 눈물만 흘린다. '흉가'는 새로 든 집의 실제적 모습이라기보다는 주인공 '나'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을 동시에 맞닥뜨려야 하는 여성으로서 겪게 되는 현실이 투영된 상징적 장치이니 것이다. 다시 21세기 오늘로 돌아와서 국가 정책이 변화하는 가족의 형태에 대응하지 못한 채 여전히 전통적 개념의 가족에 머물고 있다면 한 부모 가정 특히 싱글맘들이 겪어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은 따뜻한 보금자리여야 할 가정이 다름아닌 '흉가'와 별반 차이가 있을까싶다.

 

실제로 일자리가 있는 싱글맘의 약 40%가 시간제 근로자라고 한다. 육아와 병행해야 하고 출산에 따른 업무의 연속성이 깨진 상황에서 싱글맘의 사회진출은 거대한 장벽과도 같을 것이다. 게다가 월평균 소득 100만원 미만의 싱글맘 가구가 절반을 넘는다는 통계도 있는 걸 보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선택이 아닌 의무여야 한다는 절박한 현실일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은 여전히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탁상공론에 그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정부는 최저 생계비의 130% 이하를 버는 저소독 한 부모 가족에게 아동 양육비로 매달 7만원씩을 지원하고 있는데 아이가 12세 미만일 때로 한정하고 있다. 정작 더 많은 돈이 들어가는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한 부모 가정은 나몰라라 하는 식의 정책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런 헛점 투성이 정책은 비단 이것뿐만은 아닐 것이다.

 

복지는 과거 왕조시대 왕이 백성에게 베풀던 시혜가 아니다. 한 국가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할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 국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가 복지다. 또 복지 정책은 다른 어떤 정책보다 변화하는 현실에 가장 빠르게 적용돼야 한다. 국가 정책의 최일선에 있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재래 시장을 방문해서 부릅튼 상인의 손을 잡아주고 한 부모 가정을 찾아 엄마의 처진 어깨를 도닥여주는 것보다 그들의 얘기에 귀기울이고 그들을 위한 정책 개발에 긴긴 밤을 하얗게 새울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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