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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을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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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가시나무

 

선거가 다가오긴 다가오는 모양이다. 어디에 처박혔는지 바람에 먼지 하나 실어 보내지 않던 빈 수레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천지를 뒤흔들고 있으니 말이다. 취임 1주년이랍시고 대통령은 느닷없이 국민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 임기 내에 잠재성장률 4%, 고용율 70%,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일명 ‘474 비전이라는데 명박산성 너머에서 눈물을 흘렸다던 그 분의 ‘747(경제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하기야 그 밥에 그 나물이니 더 말해 무엇 하랴마는 어릴 적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하며 배웠던 경제개발 5개년 개혁의 짝퉁을 대면하고는 이내 실소가 터지고 만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으로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의 초석을 다진단다. 창조경제를 그렇게 강조하더니 정말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가 맞긴 맞나 보다. 이런 와중에도 그 많던 복지공약에 대한 실천 의지는 일언반구조차 없다. 곶감 빼먹듯 하나 둘 폐기하기 시작하더니 그나마 근근이 목숨만 연명하고 있던 복지공약마저도 어떻게 실천하겠다는 말 한마디 없다.

 

빈 수레가 요란한 건 비단 파란 기와집뿐만은 아니다. 알뜰살뜰 빈 수레를 채워야 할 여의도 선량들의 집에서도 덜커덕 덜커덕 요란하기는 매한가지다. 새 정치를 하겠다며 지난 1년을 왁자지껄 보냈던 유력 정치인은 새 정치의 실체를 보여주기도 전에 구 정치와 손을 잡고 또 새 정치를 하겠단다. 그들이 말한 새 정치어디에도 국민은 없다. 다만 2017년 정권교체만 있을 뿐이다. 그들도 좀 더 솔직해져야 하지 않을까? ‘정권교체가 아니라 권력교체라고 말이다. 권력과 정치라는 괴물이 사는 법을 새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들이 연명의 명분으로 내세운 국민서민은 오늘도 나락으로 나락으로 추락만 거듭하는 현실이 절망스러울 뿐이다. 대통령이건, 국회의원이건 그래도 서민들은 지푸라기라고 믿고 선거 때마다 붙잡았는데……. 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을 알기나 할까. 

 

 

 
여우 한 마리가 울타리를 오르다가 미끄러졌지요. 엉겁결에 여우는 가시나무 덤불을 잡았습니다. 가시에 찔리어 손발에서 피가 났고 여우는 아파서 소리 질렀습니다.

어이구, 나는 그대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그대는 날 전보다 못한 지경으로 만들었구려.”

그래요.”

하고 한 가시나무가 말했습니다.

나를 붙잡으려 한 것이 잘못이었지요. 내 자신 누구나 붙잡으니까요.” -<이솝우화> 중에서-

 

권력과 정치가 그들만의 리그를 치르고 있는 동안 생활고를 비관한 세 모녀는 집주인에게 공과금 밀려서 죄송합니다.’라는 메모를 남기고 번개탄 연기와 함께 저 세상으로의 여행을 떠나고 말았다. 세 모녀 자살 사연의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제는 또 생활고를 30대 엄마가 네 살 난 아들과 함께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려 숨졌다고 한다. 엄마의 옷에서는 미안하다는 글씨가 적힌 세금 고지서가 발견됐다고 한다. 권력의 장밋빛 공약과 정치권의 새 정치 논쟁 어디에도 세 모녀와 모자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잡은 건 한 가닥 희망이 실린 지푸라기가 아니었다. 지푸라기인 줄 알고 잡았는데 알고 보니 여우가 잡은 가시나무였다. 가시 박힌 손끝이 채 아물기도 전에 우리는 또 가시나무를 잡으러 한 발 두 발 나아가고 있다. 잡을 수 있는 것이라곤 가시나무밖에 없는 현실 때문만은 아니다. 어느샌가 분노하는 법을 잊어버린 우리의 그 하찮은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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