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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코끼리 무덤에 관한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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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속에는 지금은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낯선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전해지기도 한다. 하기야 요즘에도 동물외교라는 말이 있으니 낯선 동물들과의 대면은 신비함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듯 하다. 개성의 만부교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옛날부터 동물외교라는 것이 존재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은 고구려의 옛 영토를 되찾기 위해 북진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태조 왕건의 북진정책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나라는 다름아닌 거란이었다. 당시 거란은 세력이 점차 커지고 있던 나라로 거란은 당이 멸망하고 혼란에 빠져있던 중국을 공격할 목적으로 고려에 유화책으로 사신과 낙타 50 마리를 보내왔다.

 

그러나 태조 왕건에게 거란은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나라였다.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였기에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이 탐탁치 않았을 밖에. 태조 왕건은 거란이 보낸 사신을 섬에 유배시키고 낙타는 개성 만부교 아래 매달아 굶겨죽이는 것으로 거란에 대한 거란과의 관계를 일단락시켰다. 이후 왕건은 거란을 '금수의 나라'로 규정하고 거란의 언어로 제도를 본받지 말 것을 경고했다고 한다. 

 

 

한편 조선시대에도 동물외교가 있었다고 하니 그 대상은 바로 코끼리다. 조선 태종 12년에 일본이 조선과의 친교를 위해 대만에서 구입한 코끼리 한 마리를 보내왔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 본 코끼리라는 동물의 식성은 조선 관리들 혀를 내둘리게 했다. 게다가 코끼리를 사육했던 관리까지 발로 밟아 죽게 만들었으니 조선에게 일본이 보낸 친교의 상징인 코끼리는 그야말로 골칫거리에 불과했다. 결국 지금의 광양만 율촌 장도인 순천부 해도에 코끼리를 귀양(?) 보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코끼리의 어마어마한 식성은 이곳 백성들에게도 원성의 대상이 되었으니 상소를 올려 코끼리를 다시 한양으로 보냈다. 궁궐로 돌아온 코끼리는 다시 충청도 공주로 보내지고 이 곳에서 또 사육사를 밟아죽이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살인 코끼리'가 되어버린 이 동물을 어떻게 할지 고민에 빠진 조선은 결국 다시 장도로 귀양보냈고 이 곳에서 코끼리는 굶어죽고 말았다고 한다. 장도 사람들은 죽은 코끼리를 장사지내고 무덤을 만들어주었다고 하나 그 코끼리 무덤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코끼리 무덤을 얘기한다는 것이 한참 삼천포로 빠졌다. 어린이들의 만화에도 등장하고 신문이나 각종 출판물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코끼리 무덤' 이야기에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단다. 알려진 '코끼리 무덤' 이야기의 핵심은 코끼리들이 죽을 때에는 자기들의 조상이나 동료들이 죽은 장소에 가서 죽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국어연구가 미승우는 '코끼리 무덤'에 얽힌 불편한 진실을 잘못된 지식이 진실인양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코끼리 무덤'의 진실은 무엇일까.

 

아프리카에는 탄산나트륨을 주성분으로 하는 천연호수가 많다고 한다. 큰 가뭄이 계속되면 코끼리들은 이 천연호수에 와서 물을 먹는다. 이 물을 먹은 코끼리들은 탄산나트륨 중독으로 죽기도 한다고 한다. 이런 경우 '코끼리 무덤'이 발견되기도 한다. 또 하나는 코끼리떼들이 수렁에 빠져 떼죽음을 당하는 경우다. 맹수에 쫓긴 코끼리떼들이 늪이나 호수에 도망쳐 그대로 수렁에 빠져 죽는 일이 많은데 폭염에 의해 호수의 물이 증발하거나 오랜 세월이 지나 호수가 없어지면 그런 곳에서 몇십 개, 몇백 개의 상아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그런 곳을 가리켜 '코끼리 무덤'이라고 불러왔다는 것이다. 

 

코끼리는 자기가 죽을 날을 알고 한 곳에 모여 죽는다는 얘기는 거짓이다. 결국 밀렵꾼들이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감추기 위해 퍼뜨린 소문이 바로 '코끼리 무덤'인 것이다. 우리는 이런 '코끼리 무덤' 이야기를 아름다운 동화처럼 아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것이다. 

 

코끼리 무덤을 본 유일한 사람은 신밧드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신밧드의 모험' 편은 상인 신밧드가 7일간 항해하면서 겪은 모험담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일곱 번째 항해 이야기는 두가지 버전이 존재하는데 '코끼리 무덤' 이야기는 캘커타 판에 등장한다. 신밧드의 일곱 번째 항해 이야기 캘커타 판을 요약하면 이렇다.

 

신밧드 일행은 항해 도중 해적들의 습격을 받아 어느 섬으로 끌려가 배에 가득 실렸던 물건들은 똥값으로 팔려버렸고 선원들 또한 노예로 팔려나갔다. 다행히 신밧드를 노예로 산 사나이는 꽤 부자에다 마음씨도 착했던 모양이다. 부자는 장사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신밧드에게 활쏘는 법을 가르쳐주고 매일 코끼리를 한 마리씩 잡아오게 했다. 신밧드는 매일 코끼리 사냥을 하며 주인의 환대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날도 신밧드는 코끼리 사냥을 하기 위해 나무에 올라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뜻밖에도 무수히 많은 코끼리들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것이다. 대지가 흔들릴 만큼 거대한 코끼리떼의 행렬이었다. 신밧드가 가슴을 조이고 있던 차 이 코끼리떼들은 신밧드가 숨어있는 나무를 포위하더니 큰 코끼리 한 마리가 코를 나무 둥치에다 감더니 뿌리채 뽑아가지고 땅 위에 내동이쳤다. 이 충격에 신밧드는 코끼리 등에 떨어져 정신을 잃었다. 신밧드를 태운 코끼리떼가 그들이 목적지에 도착하더니 등에 엎힌 신밧드를 내동이치고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정신을 차린 신밧드는 주위를 살피고는 코끼리떼가 사라진 것을 알고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 주위를 둘러본 신밧드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밧드가 있는 곳이 바로 코끼리 무덤이었던 것이다. 신밧드는 큰 코끼리가 상아가 있는 곳을 가르쳐주기 위해 자기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으로 믿고 며칠 밤낮을 걸어 주인집에 도착해서는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그리고는 기억을 더듬어 주인과 함께 코끼리 무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코끼리 상아가 온 천지에 널려 있었다. 신밧드 덕에 일확천금을 번 주인은 그를 노예신분에서 해방시켜 줬고 신밧드는 다시 살아남은 선원들과 함께 항해를 계속해 페르시아 만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다. -범우사의 <아라비안 나이트> '신밧드의 모험' 중 일곱 번째 항해 이야기 요약-

 

우리나라의 사냥꾼 이야기에도 황당무계한 내용이 많은 것처럼 다른 나라의 사냥꾼 이야기에도 비과학적인 것이 많다. 이런 이야기의 진실을 어떻게 분별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이야기들이 진실처럼 포장하는 사회의 단면을 되돌아 볼 필요도 있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언론이 쏟아내는 수많은 정보들 중 모두 진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을 쥐락펴락 할만큼 또다른 권력이 된 언론은 악의적인 왜곡과 편파 보도로 특정 후보에게 일어설 수 없는 펀치를 가하기도 하고 또 특정 후보에게는 거짓을 진실처럼 왜곡하거나 잘못된 역사를 미화해서 대통령 자격을 갖춘 유일한 후보처럼 띄워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진실은 늘 단 하나라는 사실이다. 선택은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게 아니라 거짓 속에 숨겨진 진실 또는 진실 속에 숨겨진 거짓을 제대로 분별해가는 과정이다. 지금부터가 그 과정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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