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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영화 '혹성탈출'은 '행성탈출'로 다시 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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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두 신문 기사 중에는 잘못 사용하고 있는 단어가 있다. 비단 신문만이 아니다. 우리 자신도 잘못된 용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자주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이다. 힌트를 조금 주자면 과학용어다.

 

풀무원이 유산균 발효음료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두부 나물 등 신선식품을 주로 취급했던 풀무원이 라면ㆍ시리얼 시장에 이어 유산균 시장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하는 양상이다. 풀무원 관계자는 12일 "풀무원녹즙이 주도하고 있는 유산균 발효음료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0년 `식물성 유산균 명일엽`을 출시한 풀무원녹즙은 지난달에는 `식물성 유산균 마`를 내고 제품 라인업을 넓혔다. 그동안 방문판매만 해왔지만 최근엔 자신들이 운영하는 친환경 식품매장 `올가`에 제품을 입점시키는 등 다른 유통채널도 확대하고 있다. 풀무원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편의점, 내년엔 대형마트 입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문 2011년4월 12일 인터넷판' 기사 중에서-

 

천연가스는 석유류에 비해 분진과 유황 등 공해물질을 100분의 1까지 적게 배출하는 청정연료다. 완벽한 무공해 연료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대안 주자일 수밖에 없다.한국가스공사는 23일 세계 네 번째로 청정연료인 디메틸에테르(DME) 개발 기술을 자체 확보했다고 밝혔다. 인천의 생산기지에서 10t 규모의 DME 생산 데모 플랜트를 구축했으며 본격 국내 도입을 위한 기본 설계를 마쳤다. 또 말레이시아 나이지리아 볼리비아 등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협력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 1986년 국내에 천연가스를 처음 공급한 가스공사는 인천, 경기도 평택, 경남 통영에 세계 최대규모 LNG터미널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3022km에 이르는 고리 모양의 전국 천연가스 배관망을 구축해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 시대를 맞아 사내에 녹색성장팀을 만들어 친환경 기업으로의 변신도 꿈꾼다. -'□□일보 2012년 8월23일자 인터넷판' 기사 중에서- 

 

요란한 광고 때문에 더 익숙한 '유산균(乳酸菌)'의 정확한 우리말 표현은 '젖산균'이다. '유산균 발효음료'는 '젖산균 발효음료'로 써야 정확한 표현이다. 또 아래 기사는 잘못된 과학용어가 두 개나 포함되어 있다. '천연가스는 석유류에 비해 분진과 유황 등 공해물질을 ……'에서 '유황'의 우리말 표현은 '황(黃)'이다. 게다가 '공해(公害)'가 잘못된 표현이라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공해'는 '오염'으로 써야 바른 표기법이다.

 

 

잘못 사용하고 있는 이 과학용어들의 출처는 바로 일본어다. 우리 과학계가 정한 우리말이 있는데도 일본에서 출간한 책자의 한자말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긴 신문이나 방송, 과학서적들 때문에 우리는 잘못된 표현인지도 모르고 버젓이 정확한 표현인양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어연구가 미승우에 따르면 우리의 과학 용어는 해방 직후에 일본식 용어를 그대로 써 왔던 탓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으나 각 학회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개정 작업을 했던 탓으로 해방 직후의 용어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용어에 다른 것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더욱이 과학 용어는 국어사전에 의지하기도 어렵고 백과사전에 의지하기도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일본 서적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말 과학용어로 옮기지 못한 번역가들의 무지함도 문제지만 일제 교육의 잔재가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최근 홈쇼핑에서도 자주 등장해 식감을 자극하는 '유황 오리'가 대표적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유황'이나 '유산' 대신 '황'이나 '황산'에 익숙하지만 중년 이상 층에서도 아직도 '유황'이라는 말을 적잖게 사용하고 있다. 옛날의 '동'이나 '연'이 우리말의 '구리'와 '납'으로 바뀐지 오래고 '납중독'을 '연중독'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지만 유독 '황 오리' 대신 '유황 오리'라는 잘못된 과학 용어가 버젓이 사용되고 있는 데는 중장년 이상 층의 추억을 자극하려는 장사꾼들의 상술이 한 몫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드팅크' 대신 아직도 '옥도 정기'를 찾는 중장년층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앞서 언급한 우리말 '오염'의 잘못된 표현인 '공해'는 일본의 법률 용어라고 한다. 환경 관련 기사에서 '공해'가 들어간 문장의 앞뒤를 신경써서 살펴보면 '오염'보다 훨씬 비과학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결국 신문이나 방송이 내용과도 맞지도 않는 일본 법률 용어를 과학 용어인 것처럼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으니 '사회적 공기'로서의 역할에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한자어를 순우리말로 다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버젓이 존재하는 우리말 대신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일제강점기 시절 빼앗긴 우리말 대신 아직도 일본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현실은 해방의 시간만큼이나 부끄러운 우리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별자리' 대신 '성좌(星座)'라는 일본식 과학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신문이나 방송은 유독 영화 <혹성탈출惑星脫出>에 대해서만큼은 '행성(行星)'이라는 우리 과학 용어로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우리 언론의 성의없는 우리말 정책으로 관객이나 독자들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혹성탈출>이 올바른 표현인 양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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