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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이솝우화에서 여치가 베짱이로 둔갑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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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었습니다. 개미가 저장한 곡식이 젖어서 말리기 위해 그것을 펴 널고 있었습니다. 배고픈 매미가 먹을 것을 달라고 부탁을 했지요.

"왜 너는 우리처럼 여름에 먹을 것을 모아두지 않았니?"

하고 개미가 말했습니다.

"노래 부르느라고 시간이 없었거든."

하고 매미가 대답했습니다. 개미가 코웃음을 쳤습니다.

"여름에 노래했으니 겨울에는 춤이나 추렴." -<이솝우화> '게으름뱅이여, 개미한테 가보라' 중에서-

 

우리가 '이솝'이라고 부르는 '아이소포스(Aisopos)'는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 인물이다. '전설적 인물'이라는 소개에서 보듯 이솝에 관한 기록들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페르시아 전쟁을 중심으로 그리스와 동방의 여러나라 전설과 역사를 기술한 <역사>의 저자인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 BC484?~BC425?)에 따르면 이솝은 기원전 6세기 사람으로 사모스의 시민 이아드몬의 노예였는데 델포이에서 사모스 사람들의 손에 죽었다고 한다. 이솝은 재치가 번뜩이는 인물이었으나 추악한 외모에 말더듬이었다고 한다. 이솝의 존재에 관한 다양한 설에도 불구하고 '이솝'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는 우화들은 우리들 어린 시절의 기억 속 아득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아름다운 추억임에 틀림없다.

 

위에 소개한 이야기는 <이솝우화> 중 우리가 '개미와 베짱이'라는 제목으로 수없이 읽었던 우화다. 그런데 이상하다. 개미는 그대로인데 베짱이 대신 매미가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민음사에서 펴낸 <이솝우화>는 프랑스판을 번역한 듯 싶다. 프랑스판 <이솝우화>는 처음부터 매미가 주인공이었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솝우화>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사실은 '개미와 여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여치'가 '베짱이'로 둔갑버렸을까. 범우사에서 펴낸 「책과 인생」9월호에서 국어연구가 미승우는 '여치'가 '베짱이'로 둔갑한 사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 사연을 들어보기 전에 '여치'와 '베짱이'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자. 두 곤충의 차이는 알듯 모를듯 헛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독자라면 그 차이를 분명히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여치와 베짱이

 

여치와 베짱이는 분명 서로 다른 곤충이다. 우선 학명을 보면 여치는 'Gampsocleissedakovi obscura'이고 베짱이는 'Hexacentrus japonicus'이다. 둘 다 메뚜기목(-目) 여치과(-科)에 속하는 곤충으로 다음백과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여치 [Gampsocleissedakovi obscura]

몸은 비대하고 황록색이나 황갈색을 띠며, 날개의 가운뎃방[中室]에 검은 점이 뚜렷하게 줄지어 있다. 머리꼭대기 돌기는 폭이 넓으며 위 끝은 둥글고 아랫면은 좁다. 앞가슴의 앞쪽은 안장 모양이고 뒤쪽은 넓적하며 뒷가두리는 둥글고, 어깨는 모가 나 있다. 제1가로홈[構溝]은 뒤쪽으로 구부러졌고 중앙에서 절단되어 있으며, 제2가로홈은 V자(字)형이고, 제3가로홈은 다소 위쪽으로 구부러졌다. 가운뎃가슴의 배판돌기는 길고 좁으며 수컷의 버금생식판[亞生殖板]은 중앙이 깊이 오므라졌다. 미모(尾毛)는 가늘고 중앙 안쪽에 이빨 모양의 긴 돌기가 있으며 항상판(肛上板)은 중앙이 다소 함입(陷入)했다. 길이는 33㎜쯤 된다. 한국(한반도와 제주도)·중국·아무르·시베리아·류큐[琉球] 등지에 분포한다.

 

베짱이 [Hexacentrus japonicus]

몸길이는 30~36㎜ 가량이며, 머리꼭대기 돌기는 옆으로 넓적하고 앞이마 돌기와 연속되지 않으며, 머리와 등면은 담갈색이다. 앞가슴은 뚜렷하게 둥글며 안장 모양이고 중앙은 전부 담갈색이다. 옆가두리는 가늘고 황색이다. 수컷의 버금[亞] 생식판은 짧고, 중앙에 길고 굵은 세로홈[縱溝]이 있으며, 그 양쪽 가두리는 굵은 융기선(隆起線)으로 되어 있다. 뒷가두리는 직선이며, 미모(尾毛) 모양의 부속기는 가늘고 안쪽으로 구부러져 있다.

산란관은 머리와 앞가슴을 합친 것보다 길고, 칼 모양[劒狀]의 직선이다. 앞날개는 뒤허벅마디 끝을 초월하는데, 중앙은 폭이 넓으며 뒤쪽 끝은 가늘고 둥글다. 발음부는 크고 갈색이며, 타원형의 발음경은 담녹색이다. 앞·가운데 종아리마디에는 2열의 긴 가시가 있고, 뒤허벅마디는 뒤쪽 절반이 특히 가늘다. 한국·일본·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아직도 두 곤충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울음소리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어쨌든 이제 '개미와 베짱이' 우화의 그 오역의 역사로 들어가보자.

 

여치가 베짱이로 둔갑한 사연

 

미승우에 따르면 해방 직후까지만 해도 교과서에는 '개미와 여치'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는 갑자기 '여치'가 '베짱이'로 둔갑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번역상의 오류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 최근에는 다양한 언어의 이솝우화들이 우리글로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지만 해방 이후 우리 번역서들은 대부분 일본인들이 쓴 책이 많았다. '여치'가 어느날 갑자기 '베짱이'로 둔갑한 이유도 일본말 '기리기리스 キリギリス'를 '여치'라고 바르게 번역하지 못하고 '베짱이'로 틀리게 번역한 것이 혼란을 빚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베짱이는 일본말로 '우마오이무시 ウマオイムシ'이다.

 

게으른 사람에게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하라는 교훈만 있으면 됐지 그게 '여치'건 '베짱이'건 무슨 상관이랴 하겠지만 미승우는 '개미와 여치'일 때와 '개미와 베짱이'일 때는 분명 교육적 효과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베짱이의 울음소리가 여치의 그것에 비해 시원시원하지 않으므로 비유의 대상으로 여치만 못하다는 것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번화가에는 가게 앞에 여치를 넣은 바구니를 걸어두고 손님들에게 시원한 소리를 들려주곤 했단다. 또 중국에서도 옛날부터 여치를 길러서 울음 시합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울음소리만은 베짱이가 여치의 비교대상이 되지 못했나보다.

 

말에는 그 뜻을 잘못 알기 쉬운 낱말들이 대단히 많다. 국어연구가 미승우는 우리말도 제대로 모르는 작가에 의해 출판된 책이 상상한 것 이상으로 많음을 한탄한다. 누구나 우리말과 우리글을 바로 쓰려면 사전을 자주 찾아보는 버릇부터 길러야 한다고 충고한다. 필자를 비롯한 블로거들이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가락지와 반지처럼 그 정확한 의미가 헛갈리는 우리말이 너무도 많다. 가락지는 두 짝으로 끼게 된 고리이고 반지는 한 짝으로만 끼게 된 고리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개미가 부지런함의 상징이 된 사연을 한 편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이솝우화>에 나온 이야기다. 개미의 조상은 사실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농부였는데 늘 자기 수확물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웃의 소출을 부러움 가득 바라보고는 그것을 조금씩 조금씩 훔치기 시작했단다. 하늘에서 이를 지켜보던 제우스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농부를 개미로 변신시켜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몸만 바뀌었을 뿐 그 성품은 그대로였는데 오늘날 개미가 여기저기 쏘다니며 먹거리를 거둬들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란다. 이런 개미의 행동이 부지런함의 상징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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