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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전쟁의 상처인가, 문화적 충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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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근찬(1931년~2007년)의 <왕릉과 주둔군>/1963년

 

1980년대 국내에 불어닥친 홍콩 느와르의 충격은 대단했다. 영화 <천장지구>, <첩혈쌍웅>, <지존무상>, <영웅본색> 등에서 보여준 홍콩 문화는 당시 젊은이들의 아이콘이었다. 주춤했던 홍콩 느와르의 부활이라고 불렸던 2002년작 영화 <무간도>까지 홍콩 느와르의 주류는 아마도 남성 중심의 우애와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홍콩 느와르의 충격이 남성들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빼어난 외모의 영화 속 주인공들이 부른 노래는 여심을 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1980년대 국내를 강타한 문화적 충격은 2000년대 역으로 한류의 홍콩 강타로 반전이 이루어졌다. 홍콩 젊은이들의 휴대전화 벨소리로 드라마 <대장금> 속 주제곡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하니 문화 흐름의 대반전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같다. 그나마 서로 비슷한 문화권에서의 문화적 충격도 이럴진대 전혀 다른 문화가 유입되었을 때의 충격이란 그 정도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그것일 것이다. 영화 <아포칼립토>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스페인 함대를 바라보는 주인공 마야인 가족의 그것처럼.

 

질곡의 역사를 살아가는 민초들의 애환에 천착해온 하근찬의 글쓰기를 떠올릴 때 1963년 발표된 그의 또 다른 소설 <왕릉과 주둔군>은 조금은 의외의 소설이라는 느낌을 준다. 역시 이 소설의 주인공도 역사의 소용돌이 속을 살아가는 민초들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이 소설의 방점은 아무래도 역사의 한복판에 선 민초들의 애환보다는 어느 날 그들이 받아들여야 했던 문화적 충격일 것이다. 그렇다고 문화적 충격으로 단순화시킬 수는 없다. 소설의 전개는 다소 복합적인 메세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다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소재는 역시 제목의 '왕릉'과 '주둔군'이다. 왕릉이 고전적 가치를 상징한다면 주둔군은 새로 유입될 문화의 진원지를 의미한다. 한편 왕릉이 전통적 공동체의 상징이라면 주둔군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전쟁의 상처를 상징한다. 즉 전쟁의 상처는 이 땅에 주둔하게 될 외국 군대(주한미군)일 것이다. 왕릉과 주둔군이라는 대립적 구도는 박첨지와 그의 딸 금례를 통해서도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소설은 박씨의 선조되는 어떤 임금이 묻혀있다는 왕릉을 지키고 있는 박첨지와 그의 딸 금례와 어느 날 새벽 갑자기 왕릉 주변에 자리잡은 주둔군 캠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저자는 전쟁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대신 전쟁의 후유증으로 미국의 대중문화에 의해 파괴되는 공동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전쟁의 또 다른 상처를 보여주고 있다. 다분히 해학적인 묘사들은 상처의 깊이를 더 비극적이게 하는 효과를 준다.

 

괴상한 휘파람 소리와 함께 급한 경사를 요란스럽게 굴러 내려오는 것이었다. 꼭 한 마리의 사나운 짐승 같았다. 박첨지는 질겁을 하고 마구 뺑소니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씩씩거리며 도망을 치다가 무슨 물줄기 같은 소리에 뒤를 돌아다보았다. 능 위에서 굴러내려온 새까만 얼굴은 뒤쫓아올 생각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볼일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박첨지가 돌아보자 새까만 얼굴은 킬킬킬 웃으며 물건을 박첨지 쪽으로 번쩍 쳐드는 것이 아닌가. 거창한 오줌발이었다. 달빛을 받아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저급한 외세문화에 의한 공동체의 파괴와 유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둔군 주변에 홍등가가 생기고 동네 처녀들은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하고 야밤에 주둔군 군인들에 의한 추행도 발생한다. 급기야 박첨지의 딸 금례는 주둔군의 철수와 함께 그들을 따라가고 몇 년 후 노란 머릿빛에 노란 눈동자의 아이를 데리고 마을로 돌아온다. 박첨지가 왕릉 주변에 담을 쌓는 행위는 외세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려는 저항의 상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저자가 박첨지에 대해 절대적으로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문화의 유입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박첨지는 구시대적 인물의 표상이다. 이에 대립되는 인물이 바로 박첨지의 딸 금례다. 박첨지가 왕릉에 집착하는 것은 이미 죽은 관습이 현재를 지배하는 수구적인 행위일 수도 있다. 그는 왕릉을 지키기 위해 데릴사위까지 들일 생각을 하고 있다. 반면 금례는 이 마을에 유입된 문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해 간다. 날이 갈수록 화장을 하고 치렁치렁 땋아 늘인 머리도 조금씩 조금씩 짧아져 간다. 문화적 충격을 둘러싼 구세대와 신세대의 대립은 이 소설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메세지라고 할 수 있다. 주둔군이 박첨지의 왕릉 담쌓기를 도와주는 행위도 저자가 소설을 전쟁의 상처로 단순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왕릉 담쌓기가 중간에 멈춘 것도 새로운 문화의 유입을 전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의 상징일 것이다.

 

소설 마지막 장면에서 왕릉 근처에서 죽어가는 박첨지의 귀에 금례가 주둔군을 따라가 낳아온 혼혈아들의 '헤헤헤' 하고 노랗게 웃는 웃음소리와 먼 마을에서 흘러오는 풍물소리가  길게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는 것은 전쟁의 상처와 문화적 충격이 앞으로도 이 마을에, 이 땅에 계속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직접적으로 주한미군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소설이 발표된 시기가 5.16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라는 점에서 어떻게 온전히 세상에 나올 수 있었는지 조금은 의아스럽기도 하다. 

 

전쟁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묘사한 <수난 이대>와 달리 <왕릉과 주둔군>은 전쟁 이후 달라진 풍속의 변화와 주인공들 간에 일어나고 있는 사고의 갈등, 문화적 충격 등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소설은 민초들의 비루한 삶과 비극의 원인이 전쟁이라는 절망적 상황의 후유증이라는 공통점은 분명하게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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