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마음/정약용 지음/박혜숙 엮음/돌베개 펴냄
전직 국회의원이자 다산 연구소 이사장인 한국고전번역원 박석무 원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왜 지금 다산(茶山)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다산은 용인(用人)과 이재(理財)라는 통치의 두 가지 원리를 구체적으로 구현한 개혁가이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박원장의 다산에 대한 평가를 가벼이 흘려 버릴 수 없는 이유는 그가 현실정치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신분차별이 없는 인재등용과 백성중심의 토지제도가 오늘날에도 해결하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 시대의 권력을 향유한 위정자들이 ‘역사는 반복된다’는 문장을 깨져야 할 징크스가 아닌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그는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인물로도 유명하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가 남긴 500여권의 책이 단순하게 한 분야가 아닌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저술을 남겼음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건 기껏해야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게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돌베개에서 그 동안 고리타분하게만 느꼈던 ‘고전읽기’를 쉬운 번역과 간단한 해설을 통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우리고전 100선>을 시리즈로 출간하고 있다. 『다산의 마음』은 <우리고전 100선>의 열 한번째 책으로 다산의 다양한 산문집을 여섯 개의 장(나를 찾아서, 파리를 조문하다, 가을의 음악, 우리 농이가 죽다니, 밥 파는 노파, 멀리 있는 아이에게)으로 재구성해 그의 자기성찰과 애민정신, 세상을 보는 세심함, 남편이고 아버지였기에 고뇌했던 인간 정약용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악어의 눈물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를 필두로 국회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장관, 심지어는 청와대 각종 위원회 위원장까지 재래시장을 찾아 떡볶이나 어묵을 먹어 보이며 서민과의 친근함(?)을 과시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런 행보에 대한 진정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정책으로 구체화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악어가 먹이를 씹으면서 먹히는 동물을 향해 흘리는 ‘악어의 눈물’인 셈이다. 방송, 인터넷 등 미디어의 발전이 직접 민주주의 실현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삶의 일부가 된 미디어를 장악함으로써 통치의 편이성을 추구하는 상반된 현실에 살고 있는 것이다.
다산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그는 고통받는 백성들의 애환을 눈으로 확인하고 백성들과 부대끼며 직접 체험했다.
“아아, 이 파리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 굶어 죽은 사람들이 변해서 이 파리들이 되었다. 아아, 이들은 기구하게 살아난 생명들이다...파리야, 날아와 이 음식 소반에 앉아라. 수북한 흰 쌀법에 맛있는 국이 있단다. 술과 단술이 향기롭고, 국수와 만두도 마련하였다. 그대의 마른 목을 적시고 그대의 타는 속을 축여라.” -<파리를 조문하다> 중에서
그러나 그의 애민정신은 오늘날 유행하는 ‘○○행보’와는 차원이 달랐다. 백성들과 함께 하고픈 그의 정신은 구체적인 사상으로 이어졌다. 조선식 공산주의 사상이라고 할 만한 여전법(閭田法) 주장은 그의 애민정신을 통째로 옮겨 놓은 듯 혁신적이다. 토지의 균등한 분배, 토지의 공동 소유, 토지의 노동에 따른 분배를 골자로 하는 것이 여전법이다. 또 그는 권력의 원천은 백성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즉 부패한 권력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저항은 정당하다는 민주주의 의식도 엿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그러하지만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주장들이다.
자아성찰, 가족 및 주변의 사람과 사물에 대한 애틋함
탁상공론에 머물지 않았던 다산의 애민정신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아마도 권력 투쟁의 회오리에 휘말려 권력의 뒤안길인 오랜 유배생활이 백성과의 공감을 더욱 돈독하게 했을 것이다. 권력에 기웃거리는 대신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알았고 주변인과 주변 사물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으려 했던 노력이 있었기에 그의 사상이 진정성을 갖는 것이다.
“천하 만물 중에 잃어버리기 쉬운 것으로 ‘나’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니 꽁꽁 묶고 자물쇠로 잠가 ‘나’를 굳게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나’를 지키는 집> 중에서
‘나는 노파의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크게 깨달았고, 삼가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밥 파는 노파가 천지간의 지극히 정밀하고 미묘한 뜻을 말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매우 기이하고도 기이하도다.” -<밥 파는 노파> 중에서
“내가 너희 어머니 처지에서 생각해 보니, 문득 내가 아비라는 사실도 잊은 채 다만 어머니의 상황이 슬플 따름이다. 너희들은 모쪼록 마음을 다해 효성으로 모셔 어머니가 목숨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하여라.” -<자식 잃은 아내 마음-두 아이에게-> 중에서
지도자를 꿈꾼다면 먼저 다산을 읽어라
다산과 우리는 20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초월해 살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으니 자꾸만 빨라지는 변화의 속도를 감안한다면 200년은 개벽이라 할 만큼 당시와는 비교도 안될 진보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함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백성 위에 군림하려는 권력과 불나방처럼 그 권력을 쫓아가는 위정자들이다. 백성들의 신음소리에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버린 권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재래시장 돌며 흘리는 눈물은 시간이 지나면 마르기 마련이다. 그 눈물이 마를 수 없는 사랑이었음을 증명하는 길은 구체적인 정책으로 보여것 밖에는 없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왔다. 지도자를 꿈꾸는 선량들의 공약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들이 쏟아내는 공약에는 늘 서민이니, 백성이니 하는 단어들로 포장되어 있다. 과연 그들 중에 서민들을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권력의 달콤함에 심취해 보고픈 욕망에 영화제 주연상감 연기는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들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
그럴듯한 말장난(?)으로 유권자들을 현혹하기 전에 지도자를 꿈꾼다면 먼저 다산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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