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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어 부스럼 만든 그녀,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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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달콤함을 잊고 산지 오래다. 그렇다고 주말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보통의 직장인들과는 라이프 사이클이 반대이다보니 여가를 즐길 여유도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 회포를 풀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퇴근하는 사람들 틈에 끼여 출근을 서둘러야 하고 주말이래야 아침에 일이 끝나니 토요일 낮에는 왠종일 잠을 청하거나 그렇지 않고 다른 뭔가를 하려고 해도 일주일의 피로를 버텨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토요일 밤은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쯤은 정상적인 생활 리듬을 찾기 위해 억지로라도 자야되니 주말을 즐길래야 즐길 수가 없다. 게다가 남들보다 반나절 빠른 라이프 사이클로 일요일 저녁에는 출근을 해야하니 일요일이라고 여유 부릴 틈이 없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같이 일하는 직원들끼리 회식이라도 하자고 해서 월급날에 맞춰 모이기는 하지만 이도 월급날이 끼어있는 토요일 아침이다. 누구 한 명 선뜻 토요일 저녁에 보자는 말을 못한다. 서로를 위한 배려인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직장이 공단 지역 안에 있어 아침에도 영업을 하는 식당들이 꽤 있다. 회식 메뉴는 대개 삼겹살이다. 일주일 내내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다보니 근거있는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돼지고기 좋다고 해서 아주 특별한 날이 아니고는 삼겹살에 소주 한 잔으로 회포를 푼다.

지난 주에는 참으로 오랫만에 토요일 저녁에 회식자리를 가졌다. 일주일 전에 퇴사한 직원도 있고해서 송별회 겸. 그래도 일주일 동안 정상적인 생활 리듬에 적응했을 그 직원에게 새벽에 나오라고 하기에는 무리한 요구인 듯 싶어서 말이다. 어찌어찌 어렵게 성사시킨 토요일 저녁 회식. 이번에는 통 크게 쇠고기를 회식메뉴로 잡았다. 물론 호주머니 사정을 감안해 수입산 반, 한우 반을 섞은 쇠고기 뷔페로. 오랫만에 찾은 유성은 여전히 휘황찬란한 게 조금은 낯선 풍경이기도 했다. 하기야 주말 저녁에 나와본 지 하도 오래돼서 그럴만도 했다. 어쨌든 뷔페 음식을 먹고나면 늘 그렇듯이 어딘가 모르게 손해(?)본 느낌을 안고 오랫만에 노래방도 들러 목이 찢어져라 한 달 내내 쌓인 스트레스도 풀었다. 노래방을 나오고 헤어질까 했는데 언제 또 토요일 저녁에 볼까 싶었던지 다들 못내 아쉬운 듯 발길이 떨어지지 않더니 결국 볼링 한게임으로 마무리 하기로....그 시간에 영업을 하는 볼링장이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일단 시내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 말았다. 오랫만에 맛본 토요일 저녁의 회식이 엉망이 될 줄이야!

일단 시내로 자리를 옮기기로 하고 두 대의 차에 나눠탔고 내가 탄 차가 신호대기를 하고 있던 중 '쾅!'하는 소리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아니 몸이 흔들릴 정도로 큰 충격은 아니었고 어떤 차가 뒤에서 가볍게 충돌한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여자 혼자서 운전하고 있는 차가 우리 차를 받은 모양이었다. 가벼운 접촉사고라도 그냥 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해서 운전하던 친구에게 크게 손상된 부분이 없으면 뒷 차 운전자와 함께 양해를 구하고 그냥 출발하기로 했다. 오랫만에 즐기고 있는 회식 분위기를 깨고 싶지도 않았고 해서....또 뒷차가 여자 혼자여서 혹시나 위압감을 주지나 않을까 해서 운전하던 친구만 내렸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이 친구가 차에 타지 않길래 크게 파손된 부분이라도 있나 싶어 내렸다.

예상대로 경미한 접촉사고인지라 양쪽 차 모두 눈에 띄게 손상된 부분은 없었다. 문제는 뒷차 운전자였던 여자가 우리차가 후진하다 사고가 났다며 막무가내로 뭔가 보상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가벼운 접촉사고라 이쯤에서 끝내자는데도 말이다. 그녀는 왜 그랬을까? 혹여 우리차가 출발하기 위해 기어를 넣는 순간 약간 후진했더치더라고 뒷차는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었고 더욱이 서로의 차량이 손상된 것도 아니고....잠시 후 경찰까지 왔으나 양쪽 차를 보고는 알아서 합의하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더욱 황당했던 것은 그녀가 보험처리 하자며 각자 가입된 보험사를 부르자는 것이다. 보험사 직원들까지 출동했고 그녀는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니 친구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이 왔다.

회식 분위기는 점점 짜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중에 나타난 여자가 음주 측정을 해보자며 새로운 제안을 내놨다. 그때 시간이 새벽 한 시가 넘었으니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했을까 그 말 한마디에 우리는 빼도박도 못하고 그쪽 요구를 들어줄 거라 생각했을까.

참 오랫만에 저녁 모임이라 좀 편안하게 즐길겸 해서 방향이 같은 직원들 다섯 명이 한 차로 회식에 참석했다. 회식이 끝나고 각자 택시를 타느니 차 한대로 대리를 부르는 게 더 나을 성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차를 가져온 친구는 대리를 불러 번거롭게 여기저기 내려주느니 자기가 운전해서 가겠다며 술도 먹지 않은 상황이었다. 우리는 그쪽 제안대로 하자며 근처 파출소로 갔다. 오히려 가장 빨리 일을 마무리짓고 다시 회식 분위기를 살리는 길은 그쪽 제안대로 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지 싶었다. 먼저 파출소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뒷차는 올 생각을 안했다. 사고 지점에서 채 오 분도 안되는 거리인데....10분, 20분이 지나도 깜깜 무소식. 전화를 해도 받질 않고. 30분쯤 지났을까. 그 쪽에서 부른 보험사 직원 혼자 파출소로 왔다.

그 쪽에서 하자는대로 했는데...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험사 직원의 말은 더 황당하기 그지 없었고 우리는 허탈함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뒷차 운전자가 음주운전이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왔던 그녀의 친구는 이 사실을 모르고 우리에게 이런 제안을 했던 것이고. 그러면서 피해보상을 해주겠다며 자리를 떴단다.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하는 동안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나버렸다. 더 이상 회식 분위기를 이어가기에는 우리는 이미 지쳐있었고 그럴 기분도 아니었다. 결국 오랫만의 토요일 저녁 회식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예전에 조그만 사업을 할 때 뉴질랜드에 출장가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에 가이드에게 뉴질랜드 운전면허시험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차가 그리 많지 않은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날 때였다. 우리 일행이 탄 차가 사방이 뻥 뚫린 신호가 없는 교차로를 앞두고 속도를 줄이더니 정차하는 게 아닌가. 양 쪽으로 차가 보이지도 않고 기껏해야 맞은 편에서는 그것도 교차로에 진입하려면 한참 걸리는 먼 곳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맞은 편에서 오고 있는 차가 교차로에 진입해서 직진하겠다는 의사를 확인하고 우리 일행이 탄 차도 다시 출발했다. 가이드가 설명하길 뉴질랜드 운전면허시험은 기능시험이나 주행시험보다 인성 테스트가 가장 중요한 부부을 차지한다고 했다. 그제서야 방금 본 장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떤가. 아직도 일명 나이롱 환자(?) 관련 뉴스가 종종 나오고 있고 경미한 접촉 사고로도 뭔가 이득을 취해볼 속셈으로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일들이 적지않게 발생하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자동차에 비해 운전문화는 여전히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말로는 남을 위한 배려를 외치지만 운전대만 잡으면 난폭해지고 경미한 접촉사고에도 일단 뒷목을 잡고보는 문화가 일상이 돼 버렸다. 세상이 각박해 졌다고 한탄하지만 사실은 우리 스스로가 그런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따진다면 피해자가 배려를 한 것이라 생각했는데....긁어 부스럼 만든 그녀, 왜 그랬을까.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 버린 그녀를 생각할 때 조금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꿀맛같은 토요일 저녁 회식은 언제 또 할 수 있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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