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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아파트에 투사된 현대인의 고독과 인간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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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타인의 방>/1971년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데이비드 리즈먼(David Riesman, 1909~2002)은 그의 저서 <고독한 군중, The Lonely Crowd>에서 미국사회의 성격을 전통지향형(tradition directed type), 내부지향형(inner directed type), 외부지향형(other directed type)의 세가지로 분류하고 역사적으로 전통지향형에서 내부지향형으로 다시 외부지향형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한 '고독한 군중'이란 외부지향형 성격을 가진 현대인의 성격유형으로 내면적 고립감은 자기상실로 이어지고 이런 성격유형이 지배한 사회에서는 정치적 무관심이 팽배해 지면서 결국 민주주의 체계를 위협하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고 했다.  

리즈먼이 말한 '고독한 군중'은 기계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해가는 산업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리즈먼의 '고독한 군중'이 20세기 초 미국사회의 자화상이라면 한국사회는 1970년대 이후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산업화의 격랑 속에 인간과 기계는 전도되고 전통적 개념의 가족 해체와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농촌의 붕괴의 붕괴와 도시 빈민의 출현은 1970년대 이후 한국사회를 아우르는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더욱이 조국 근대화라는 명분으로 자행된 국가의 억압은 외부지향적 사회로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최인호의 소설 <타인의 방>은 이런 사회 분위기를 섬세한 심리묘사로 간파하고 있다. 자아를 상실해 가는 현대인의 고독과 인간소외를 아파트라는 공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아파트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산업화의 결과물이자 도시를 대표하는 사물이다. 또한 공동체 사회를 가로막는 비인간적 현실이 존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당신이 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해서 그래 이 집 주인을 당신 멋대로 도둑놈이나 강도로 취급한다는 말입니까? 나두 이 집에서 삼 년을 살아왔소. 그런데두 당신 얼굴은 오늘 처음 보오. 그렇다면 당신도 마땅히 의심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겠소?" -<타인의 방> 중에서-

산업화가 가져다준 문명의 이기 속에서 왜 인간은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산업화로 야기될 수밖에 없는 기계와 사물의 인간 대체 때문이다. 외적으로는 타인의 무리에 합류하고자 하지만 나를 둘러싼 환경은 고립과 소외를 내면 깊숙한 곳에 움트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국가의 억압과 탄압은 공동체적인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만다. 주인공 그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일상적 행동을 반복하고 있지만 그가 느끼는 것은 낯설음이고 타인의 방에 온듯한 착각과 집을 채우고 있는 가구들이 타인의 눈이 되어 자신을 감시하는 듯한 불편함 뿐이다.

급기야 주인공 '그'는 자신의 집을 구성하고 있는 사물의 일부로 변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 독일)의 소설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일어나 보니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것처럼.이렇게 그는 부활을 꿈꾸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활'이라는 단어에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인간과 사물이 전도된 산업사회의 냉혹한 현실일 뿐이다. 나중에 방에 들어온 아내가 그게 남편인지 아니면 전부터 있던 가구인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물건을 발견하고는 잠시 동안 즐기다 싫증이 나서 다락방 잡동사니 속에 처넣어버리는 장면에서는 인간소외의 절정을 보여준다.

그는 손을 뻗쳐 무거워진 다리, 그리고 더욱더 굳어져오는 다리를 끌고 스위치 있는 곳까지 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는 채 못 미쳐 이미 온몸이 굳어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는 숫제 체념해버렸다.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조용히 다리를 모으고 직립하였다. 그는 마치 부활하는 것처럼 보였다. -<타인의 방> 중에서-

소설은 소외된 현대인의 두가지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그는 폐쇄되고 억압된 공간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반면 아내는 방을 떠나는 방식으로 현실에 대응한다.

그러고보니 현대인의 고독과 인간소외를 상징한다는 아파트가 최근에는 좀 더 광범위한 의미를 지닌 것 같다. 투기라는 형태로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기도 하고 폐쇄된 공간이라는 익명성이 주는 일탈의 현장이기도 하니 말이다. 어쨌든 <타인의 방>에서 보여준 현대인의 고독이 단순히 산업화와 현대화의 결과물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에서 보여주듯 법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권력의 지배와 억압논리가 이런 현대인의 고독과 인간소외, 인간성 상실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고독한 군중의 행동양식인 정치 무관심은 시대의 조류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조장되는 것이다.

고독과 소외를 탈출해 공동체적 삶을 복원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모색되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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