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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엘렉트라, 그녀에게 돌 던질 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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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BC 431년 초연

얼마전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8개월 동안이나 자신의 집에 방치한 고등학생이 체포되는 충격적인 사건을 접한 적이 있다. 수능 성적 스트레스가 그 원인이었다고 하니 지나친 학벌중시 사회가 낳은 괴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편 이 학생의 엽기적 살인행각에는 자식의 명문대 입학을 꿈꿔온 어머니의 무차별적 폭력에 그 원인이 있었다고 한다. 폭력의 대물림이다. 존속살인은 범죄라는 일상적 용어보다 패륜이라고 하여 반인륜적 범죄로 분류하기도 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존솔살인은 매년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 2008년 44건에서 2010년 66건으로 2년 사이에 무려 50%가 늘었다고 한다. 또 전체 살인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08년 4.0%에서 2010년 5.3%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2009년 기준으로 다른 나라의 존속살인이 전체 살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이 2%, 프랑스가 2.8%, 영국이 1% 등 우리나라의 존속살인 비율이 현저히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부끄러운 기록으로만 치부하기보다는 가정폭력과 폭력의 대물림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요구되는 현실이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존속살인은 그리스 비극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의 악녀 중 악녀로 평가받고 있는 엘렉트라가 그 주인공이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엘렉트라>는 잔인한 존속살인과 존속살인의 원인이 우연히 발생하는 범죄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엘렉트라는 아버지 아가멤논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어머니 클리타이메스트라와 의붓 아버지 아이기스토스를 살해하기 위해 철저한 범행을 모의한다. 여자의 몸으로 부모를 죽이기 힘이 모자랐던 엘렉트라는 동생인 오레스테스를 이용한다. 물론 그녀가 패륜적 범죄를 모의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엘렉트라 이 고역을 택한 것은 나, 아이기스토스의 무도한 짓을 하늘의 제신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그리고 틴다레오스의 사나운 딸, 내 어머니란 인간은 사내의 환심을 사려고 나를 헌신짝처럼 집에서 몰아냈지. 아이기스토스의 잠자리에서 딴 자식을 만드느라, 나와 오레스테스는 의붓자식 다루듯 해 버렸단 말이야. -<엘렉트라> 중에서-

엘렉트라의 범행은 동생 오레스테스를 만나고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의붓 아버지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고 이제 어머니만 살해하면 엘렉트라의 반인륜적 범죄는 완벽한 성공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오레스테스는 의붓 아버지와 달리 친어머니인 클리타이메스트라를 살해하는 데는 심적 갈등을 겪게 된다.

오레스테스 하느님 맙소사! 나를 낳고 나를 길러주신 어머니를 내 손으로 어떻게 죽인단 말인가.
엘렉트라 죽여버리는 거야. 저 여자가 나의 아버지인 그분을 죽인 바로 그대로 말이야.
오레스테스 아, 아폴론이여. 당신께서 내리신 말씀이 이렇게도 어리석고 몰인정합니까?
엘렉트라 아폴론께서 어리석다면 세상에 어느 누가 슬기롭다고 할 수 있겠니? -<엘렉트라> 중에서-

결국 엘렉트라의 끈질긴 설득으로 오레스테스는 친어머니 살해라는 천륜에 반하는 행각을 하고 만다. 엘렉트라는 단순히 아버지의 복수에 대한 일념으로 이같이 천인공로할 범행을 저질렀을까. 아무리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손 치더라도 친어머니가 아닌가. 여기서 폭력의 대물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살해당하기 전 클라이메스트라의 절규를 통해 엘렉트라에게 무의식 주에 주입된 폭력의 실체를 폭로한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아르고스의 왕 아가멤논은 아내인 클라이메스트라와의 사이에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 외에도 이피게네이아와 크리소테미스라는 두 딸이 더 있었다. 알다시피 아가멤논은 동생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납치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를 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아가멤논은 트로이 출격을 준비하지만 역풍이 불어 함대를 띄울 수 없었다. 여신 아르테미스의 저주라고 생각한 아가멤논은 아르테미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자신의 딸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게 된다. 승전을 위장한 또 하나의 존속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란 엘렉트라가 또다시 존속살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된 것은 당연한 업보가 아닐까.

이런 그리스 비극을 토대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와 대비되는 엘렉트라 콤플렉스(Electra Complex)를 탄생시켰다. 즉 3~5세기의 여자 아이에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초자아를 발전시킴으로써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 시기에 이런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노이로제의 주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즉 아버지에 대한 강한 소유욕은 어머니를 경쟁자로 인식한다는 이론이다. 심리학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 이론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회현상으로서의 폭력의 대물림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나 싶다. 

예수가 만난 불결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돌을 던진 사람들처럼 우리도 앞서 언급한 어머니를 살해한 학생과 엘렉트라에게 온갖 형태의 비난을 퍼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엘렉트라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선 이런 패륜적 범죄가 횡행하게 만든 사회적 병리현상에 대해 얼마나 고민을 했으며 고민의 결과로 제대로 된 제도적 개선을 이루어왔냐는 것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회를 벗어날 수 없다면 우리도 가해자요 공범일 수도 있다.

게다가 인간의 탐욕은 끊임없는 전쟁을 통한 패륜적 범죄행위를 한 순간도 건너뛴 적이 없다. 전쟁을 대신할 평화는 요원한 꿈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엘렉트라만이 정신적 병리현상을 겪었던 게 아니라 오늘의 세계 자체가 마치 거대한 정신병동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엘렉트라, 그녀에게 돌 던질 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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