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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팜므파탈 메데이아의 잔인한 사랑의 복수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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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BC 431년 초연

 

그리스 신화에서 메데이아는 왕녀이면서 마녀로 표현되곤 한다. 그녀는 흑해 동쪽 끝 콜키스의 아이에테스왕의 공주였다. 그리스 신화에서 콜키스라는 나라가 등장하는 것은  그곳에 황금양 모피가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콜키스 땅에 이아손(영어식 표기로는 Jason이라면 좀 더 익숙할 듯...)이 아르고 원정대를 이끌고 황금양 모피를 찾으러 간다. 신화건 소설이건 사랑이 빠지면 왠지 간이 덜 된 음식 같은 것. 메데이아는 아르고 원정대의 대장 이아손을 보고는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아손이 황금양 모피를 찾을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메데이아의 잔인한 성격(?) 때문이었다. 이아손은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아이에테스왕의 함정을 피해 황금양 모피를 얻을 수 있었고 콜키스 땅을 도주하는 이아손을 위해 자신의 동생인 압시르토스를 죽여 시체를 토막낸 다음 바다 위에 던져 아이에테스왕이 시체를 수습하는 동안 콜키스 땅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메데이아의 잔인함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메데이아는 이아손과 함께 이아손의 왕국인 이올코스로 돌아왔으나 이아손의 삼촌 펠리아스에게 권좌를 빼앗겨 버리고 만다. 메데이아가 누군가! 주술과 마술을 주관하는 여신 헤카테를 숭배한 마법사가 아니었던가! 메데이아는 마법을 부려 펠리아스의 딸들이 아버지를 펄펄 끓는 가마솥에 넣어 죽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메데이아와 이아손은 백성들의 원성을 사 이올코스를 떠나 코린토스로 귀양을 떠나게 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행위는 마치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른다. 이곳에서 이아손은 크레온 왕의 공주 글라우케와 결혼을 하고 만다. 메데이아의 배신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고도 남을 일. 그리스 비극의 진수로 평가받는 에우리피데스(BC484?~BC406?)의 희곡 <메데이아>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19세기 유럽 문학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팜므파탈(femme fatale)이라는 말이 있다.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치명적인 여자', '숙명적인 여자'란 의미일 것이다. 즉 팜므파탈은 남성을 파멸적 상황으로 이끄는 매력적인 여자를 의미한다. <메데이아>의 주인공 메데이아가 바로 팜므파탈의 원형은 아닐까. 에우리피데스는 '팜므파탈' 메데이아를 통해 인간 속에 숨어있는 악의 정체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적절하게 잘 구현해내고 있다.

한편 메데이아의 잔인한 복수극은 요즘으로 치자면 어떤 명분도 이유도 없는 극악한 범죄에 해당하겠지만 그래도 연민을 느끼는 것은 악의 정체가 또는 악의 원형이 단순히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니 하는 말로 치부하기에는 주변환경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메데이아의 잔인한 복수극이 인류가 가진 성정 중 가장 아름답다는 사랑을 매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을 위해 아버지를 배신하고 동생을 죽이고 차마 사람의 짓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잔인한 살인을 서슴치 않았던 메데이아, 그러나 그런 메데이아를 두고 특별한 명분도 없이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되어버린 이아손을 보면서 메데이아의 잔인한 복수극에 연민의 정을 느낀다면 악의 정체를 지나치게 옹호하는 것일까. 코린토스 여자들로 구성된 코러스의 노래대로 남녀관계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서 참아야만 하는 것일까. 메데이아의 가슴 깊숙한 곳에 숨어든 악의 정체를 깨운 이아손에게도 일정 부분의 책임이 있는 건 아닐까. 법 이전에 말이다.

코러스 하느님이여, 대지여, 저 하늘이여. 저 외침 소리, 애틋한 아씨의 탄식을 듣나이까? 가련한 아가씨. 끔찍스런 죽음의 잠자리를 왜 그리워하나이까. 죽음은 기약을 맺지 않아도 찾아오는 법, 바라질랑 마십시오. 서방님께서 다른 계집을 찾아 마음을 돌렸다 하더라도 흔히 있는 일,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제우스는 당신 편, 임이 등졌다 하여 상심일랑 하지 마십시오. -<메데이아> 중에서-

게다가 메데이아 복수극의 절정을 이루는 부분은 남편 이아손에게 복수하기 위해 남편의 여자와 장인을 죽이고 급기야는 자식들까지 죽이게 된다. 복수의 화신으로 등극하는 장면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일말의 모성애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여인으로 추락하고 만다. 결코 두둔할 수는 없지만 모성애만은 결코 버릴 수 없었던 한 여인이 어머니로서 느끼는 갈등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어차피 죽게 되는 것 아이들을 적들의 손에 넘기지 않기 위해 그 아이들을 직접 낳은 메데이아 자신이 아이들을 죽일수 밖에."
………
아 어떡하면 좋지? 저 아이들의 빛나는 눈을 보고 있으니까, 여러분. 내 마음이 꺾이고 마는군요. 도저히 못하겠어. 지금까지의 내 계획은 버려야겠어. 내 자식이 아닌가. 아이들을 희생시켜 그 아비에게 고통을 주다니……아니 내가 어떻게 된 거지? 이 원수놈들을 고스란히 내버려 두고 나 혼자만 조롱거리가 되겠다는 말인가? 할 것은 해야 돼. 아, 얼마나 약한 여자인가. 그 철석같은 마음을 간적히지 못하다니. -<메데이아> 중에서-

결코 원수의 손에 자식이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메데이아는 비극의 절정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에우리피데스에 대해서 알려진 사실들이 그리 많지 않은데 각종 문헌을 통해 여성에 대한 혐오감이 상당히 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에우리피데스는 신화 속에 나타난 메데이아의 악행들에 이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비극의 극대화를 꾀하지 않았을까.

흔히 인간의 본성을 표현할 때 맹자의 맹자의 성선설(性善說)과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을 언급하곤 한다. 어느 누구도 인간의 마음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본 적은 없다. 또 그럴 수도 없다. 그렇다면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도 또 메데이아의 잔인한 복수극도 결국엔 환경의 영향으로 어느 쪽이 행동으로 표출되느냐의 문제가 아닌지 모르겠다. 여성 혐오감이 심했던 에우리피데스도 메데이아가 복수극에 이르는 과정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런 이유일 수도 있겠다.

참고로 이 일이 있은 후 메데이아의 행적에 관해서는 그리스 신화에서도 다양한 설이 있다고 한다. <메데이아>에 등장하기도 한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테세우스의 아버지)와 함께 결혼해서 또다시 테세우스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아테네를 떠났다는 설도 있고 엘리시온에 들어가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결혼했다는 설도 있다. '팜므파탈' 메데이아다운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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