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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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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리지/이중환/1751

 

미국의 경영 컨설팅 업체인 머서가 세계 221개 도시를 대상으로 한 '2011년 세계 주요 도시 생활의 질' 순위에서 오스트리아의 빈이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스위스의 취리히와 뉴질랜드의 오클랜드가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는 2년 연속 가장 위험하고 살기 어려운 도시로 선정됐다고 한다

머서가 선정한 살기 좋은 도시 선정기준은 각국의 정치, 경제, 환경, 보건, 교육, 주택, 문화, 공공서비스 등을 지수화해서 종합평가한 것으로 다국적 기업과 정부의 해외 주재원 노라 머서는 다국적 기업과 정부 해외 주재원의 임금과 복지정책 참고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또 올해부터는 개인 안전도가 추가되었는데 이 분야에서는 룩셈부르크가 1위로 선정됐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얼마나 살지 좋은 나라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어디일까? 그리고 시대에 따라 살기 좋은 기준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를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세계 최초(?)의 인문지리서

이중환이 <택리지>를 저술하게 된 계기는 당쟁이 원인이 되었다. 이중환의 장인이 1721년에서 1722년 사이에 일어났던 임인사화와 관련되어 사형되자 이중환까지 화를 입어 1725년 절도(
絶島)로 귀양을 갔고 1727년 풀려났으나 다시 사헌부의 논계(論啓, 신하가 임금의 잘못을 따져 아뢰는 것) 다시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이 어딘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어쨌든 이중환은 두 번의 귀양살이 이후 30년 가까이 전국을 방랑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런 방랑 생활의 결과물이 바로 <택리지>였다

 

 

<택리지>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라고 하면 단순한 지리서가 아닌 각 지역에 얽힌 역사적 배경이나 지형, 생활방식, 자원과 유통과정 등을 망라한 종합적인 인문지리서라는 것이다. 1807년 세계 최초로 지리서를 집필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 독일의 지리학자 카를 리터(Carl Ritter, 1779~1859)보다 1백여 년 앞선 세계 최초(?)의 지리서로 평가하는 학자들도 있다.

한편 이중환이 30여 년의 전국 여행을 통해 저술한 역작인 <택리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을 밝히고는 있지만 이는 저자 자신의 극히 주관적인 생각일 뿐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택리지> '발문'에 나오는 한 문장은 당쟁의 피해자였던 저자에게 <택리지>의 저술동기가 또다른 데에 있음을 짐작케 해준다

옛사람이 "예악
禮樂 어찌 옥백玉帛이나 종고鍾鼓만을 말한 것이랴." 했다. 나의 이 글도 살 만한 곳을 고르려고 해도 살 만한 곳이 없음을 탄식한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넓게 보는 사람은 문자 밖에서 (참뜻을) 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택리지> '발문' 중에서

살기 좋은 곳이란?

<택리지> 「사민총론」, 「팔도총론」, 「복거총론」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민총론」은 사농공상의 4계급에 대해 소개하고 있고 「팔도총론」은 조선 8도의 지역성을 그 지방 출신 인물들과 결부시켜 밝히고 있다. <택리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복거총론」이다. 「복거총론」에서는 전국 8도 중에서 '가장 살만한 곳'에 대한 입지조건을 설명하고 저자가 직접 '살만한 곳'을 선택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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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리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충청남도 공주 갑천(현재는 대전광역시 서구에 해당함)이라고 한다. 이중환이 이런 결론을 내기까지 4가지의 입지조건을 밝히는 부분이 「복거총론」이다. 이중환이 밝히는 '살기 좋은 곳'이란 어떤 곳일까.

이중환은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4가지 입지조건을 제시했다. 가장 먼저 제시한 입지조건은 지리(地理). 지리를 볼 때는 먼저 수구(水口)를 보고 그 다음에 들판의 형세를 보고, 그 다음에 산의 모양을 보며, 그 다음에는 흙의 빛깔을 본다고 했다. 그 다음에는 수리(水理)를 보고 마지막으로 조산(朝山)과 조수(朝水)를 봐야한다고 했다. 즉 풍수를 말하는데 그렇다고 이중환이 풍수지리설을 맹신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두번째 입지조건으로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가지 물질적 재화의 총체인 생리(
生利)를 들었다. 세번째는 인심(人心)을 들었는데 여기에서는 당쟁의 시초와 과정 등을 자세히 기술한다. 당쟁의 피해자인 저자의 심정을 읽을 수 있다. 결국 사람이 살만한 곳이란 무엇보다 같은 색목(당파가 같은)이 모여사는 사는 것이라고 했다.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사대부가 없는 곳이라고 했으니 그가 얼마나 당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살만한 곳의 입조조건으로 산수(山水)를 제시했다.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즉 인간의 정서적 측면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4가지 입지조건을 따져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공주 갑천을 꼽았다.



이중환의 <택리지>를 통해 18세기 사람들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을 살펴봤는데 결국은 당쟁이 없는 정신적으로 편안한 곳이 가장 살만한 곳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요즘은 어떨까? 근대화를 거쳐 현대화가 완성될 때까지는 모든 생활의 이기가 있고 문화적으로 즐길 수 있는 도시가 살기 적합한 곳이었으리라. 그러나 무분별한 개발로 각종 환경오염과 정신적 스트레스에 신음하는 현대인들은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공간을 선호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시대에 따라 그 기준이 결코 같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 살만한 곳에 대한 조건이지 싶다

가보지도 않고...

「복거총론」 '산수' 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내가 전라도와 평안도는 가보지 못했지만 함경도, 강원도,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는 많이 가 보았다.

한편 「복거총론」 '인심' 편에는 팔도 인심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 팔도 가운데 인심이 순박하고 두텁기로는 평안도가 으뜸이다. 그 다음에는 경상도의 풍속이 질박하고 진실하다. 함경도는 지역이 오랑캐 땅과 닿아 있으므로 백성들이 모두 굳세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산과 물이 험하기 때문에 사납고 모진 백성들이 많다. 강원도는 산골 백성들이어서 많이 어리석고, 전라도는 오로지 간사한 짓을 좋아해 올바르지 않은 일에도 쉽게 움직인다. 경기도는 도성 밖 들판 고을의 백성과 물자가 보잘것 없고, 충청도는 권세와 이익만 쫓는다. 이것이 팔도 인심의 대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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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리지>의 가장 큰 결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직접 가보지 않은 지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지방의 인심과 풍속을 바라보는 데는 균형 감각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또 그가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지목한 공주 갑천은 이중환이 나고 자란 곳이라는 설도 있다. 게다가 여러가지 입지조건을 제시한 살기 좋은 곳은 모든 백성이 아닌 사대부들의 그것으로 국한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이중환의 <택리지>는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인문지리서라는 점과 서술이 과학적이라는 점은 그 가치가 상당해 보인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기존의 지리서가 대부분 풍수지리서인데 비해 이중환이 현대적 의미의 인문지리서를 최초로 저술했다는 점과 현대지리학의 시조로 알려진 카를 리터의 저술보다 백년 이상 앞선 인문지리서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중환의 살기 좋은 곳의 4대 입지조건(지리, 생리, 인심, 산수)이 그 원리만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2011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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