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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일제는 왜 <금수회의록>을 금서로 지정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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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선의 <금수회의록>/1908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나타났던 고전소설과 현대소설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소설의 한 갈래를 신소설이라고 한다. 김동인의 소설을 근대소설의 시작으로 본다면 신소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월씬 광범위한 작가와 작품을 포괄한 소설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신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로는 이인직이 꼽힌다. 그러나 그의 친일행적들이 밝혀지면서 이인직을 신소설 대표작가로 교과서에 올려도 되는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하기야 몸만 조선인이었을 뿐 정신은 온통 내지인(일본인)이었으니 그를 한국 문학사의 주연급으로 대우한다는 것도 문학인들에게는 자존심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자유종>의 저자 이해조를 신소설 대표작가로 부상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은 힘을 얻고 있다. 이인직, 이해조 말고도 신소설을 얘기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개화 사상가이자 언론인이기도 했던 안국선(1878~1926)이다.

관비유학생이었던 안국선은 일본에서 근대문명을 접하고 귀국해서는 독립협회에 가입하는 등 애국계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즘(1908년) 발표한 신소설이 바로 <금수회의록>이다. 또 안국선은 1915년 개인 단편소설집인 <공진회>를 펴내기도 했다. 근대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금수회의록>이 어떤 내용인지 대강은 알 것이다. 그러나 안국선의 신소설 <금수회의록>이 당시 금서였다는 사실은 다소 생소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뿐만 아니라 그의 단편소설집인 <공진회>에도 일부 실리지 못한 소설들이 몇 편 있었다니 '왜?'라는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다.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은 왜 금서가 되었을까?

<금수회의록>이 금서가 됐던 이유

1908년 발표된 <금수회의록>은 1909년 일제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었다. 그 이유는 당시 시대적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09년이면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침략이 구체화되어 가는 시점이었다. 1907년 한반도 안에서 생겨난 최초이자 마지막 황제였던 대한제국의 고종이 일제의 조종을 받던 친일내각에 의해 폐위되고 순종이 유명무실한 권좌를 이어받게 되었다. 한편 당시 개화사상가들은 풍전등화 신세가 된 조국의 백성들에게 개화사상을 심어주고 일제의 침략을 인식시켜주기 위한 활동방법으로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로 대표되는 대중집회였다. 

조선 병합을 목전에 둔 일제가 이를 그냥 두고볼 리 만무했다. 일제는 모든 대중집회와 출판물에 대한 검열을 강화하기 시작한다. <금수회의록>이 일제에 의해 금서로 지정된 것도 이런 시대적 배경의 연장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대부분이 일본 유학파였던 개화사상가들의 애국계몽운동에도 한계는 분명 존재했다. 어쨌든 <금수회의록>이 금서가 된 데는 이런 시대적 상황 때문에 아무런 이유없이 휩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금수회의록>에는 일제의 심기를 건드릴만 한 뭔가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타락해가는 인간세상을 풍자하다

<금수회의록>은 신소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화에 더 가깝다. 즉 의인화된 동물들이 인간세상을 비판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또 꿈이라는 고전소설의 전형이 여전히 남아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한편 <금수회의록>에는 기독교적 윤리관이 짙게 깔려있다. 다만 이 기독교적 윤리관은 우리의 전통윤리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대변하듯 의인화된 동물들의 연설을 통해 스토리가 전개된다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금수회의록>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일반인들이 익히 알고 있는 사자성어의 주인공들이다. 다음과 같은 한자성어들이다. 까마귀(반포지효), 여우(호가호위), 개구리(정와어해), 벌(구밀복검), 게(무장공자), 파리(영영지극), 호랑이(가정맹어호), 원앙(쌍거쌍래). <금수회의록>에서 연사로 등자하는 동물들은 인간이 자신들을 빗대어 만들어준 사자성어를 강조하거나 반박하는 형태로 인간세상의 타락상을 비판한다.

까마귀처럼 효도할 줄도 모르고, 개구리처럼 분수 지킬 줄도 모르고, 여우보담도 간사하고 호랑이보담도 포악하고 벌과 같이 정직하지도 못하고, 파리같이 동포 사랑할 줄도 모르고, 창자없는 일은 게보다 심하고, 부정한 행실은 원앙새가 부끄럽도다. -<금수회의록> 중에서-

동물 연사들이 폭로하고자 하는 것은 대부분 인간들의 윤리적 타락이지만 당시 관료사회에 대한 풍자도 빼놓지 않는다. 당시 관료사회라 함은 친일 내각과 친일 개화사상가들을 지칭함이 분명하다. 조선침략 야욕을 착착 진행하고 있던 일제로서는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제 나라 형편도 모르면서 타국 형편을 아노라고 외국 사람을 부동하여, 임금을 속이고 나라를 해치며 백성을 위협하여 재물을 도둑질하고 벼슬을 도둑하며 개화하였다 자칭하고....-<금수회의록> '개구리'의 연설 중에서-

게의 연설 중에도 저자의 이런 의도는 명백하게 드러난다.

만판 경륜이 임금 속일 생각, 백성 잡아먹을 생각, 나라 팔아먹을 생각밖에 아무 생각 없소. 이같이 썩고 더럽고 똥만 들어서 구린내가 물큰물큰 나는 창자는 우리의 없는 것이 도리어 낫소. -<금수회의록> '게'의 연설 중에서-

파리의 연설은 친일내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지목한다.

사람들아 사람들아, 너희들은 너희 마음속에 있는 물욕을 쫓아버려라. 너희 머릿속에 있는 썩은 생각을 내어쫓으라. 너희 조정에 있는 간신들을 쫓아버려라. 너희 세상에 있는 소인들을 내쫓으라. 참외가 다 무엇이며, 먹이 다 무엇이냐? -<금수회의록> '파리'의 연설 중에서-

호랑이 연설에서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혹독하다'는 의미의 '가정맹어호'가 현실에서 자행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지금껏 살펴본 대로 일제가 <금수회의록>을 금서로 지정한 데는 그들의 조선침략 야욕과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형태의 문학 장르인 신소설이 대개 개화사상이나 계몽에 그쳤다는 점에서 안국선이 <금수회의록>에서 보여준 일제의 조종을 받던 관료들에 대한 풍자는 분명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그동안 최초의 신소설로 평가받아온 이인직의 <혈의 누>가 일본어 문법을 따른 제목만큼이나 그 내용면에서도 일제를 미화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신소설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립이 필요해 보인다. 뼛속까지 일본인이고자 했던 이인직이 한국 문학사의 주요작가로 등재될만한 어떤 명분도 없다. 오히려 한국사와 한국문학사를 부끄럽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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