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친일파 이인직에게도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반응형
이인직의 <빈선랑의 일미인>/1912년

1909년 도마 안중근 의사가 사살한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 이토 히로부미의 추도식에서 추도문을 낭독한 조선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고전소설과 최초 근대소설로 평가받는 이광수의 <무정>사이의 문학사적 연결고리리인 신소설의 최고작가로 알려진 이인직이다. 한국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이인직이지만 그는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철저한 친일파였다. 그는 세상과의 마지막 이별에서도 일본 종교인 천리교 의식을 따르는 등 영혼까지 일본인이고자 했던 극렬 친일파였다.

친일파의 대명사 이완용의 특사이기도 했던 그는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일본의 조선침략을 정당화하며 1910년 조선에게 경술국치의 치욕을 안겨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조선왕조를 비판했고 당시 들불처럼 일어났던 의병을 규탄했으며 일본 천황의 통치로 조선은 태평성세를 누리고 있다며 주장하고 다녔다. 조선인이기를 거부했던 그를 우리는 이 땅의 역사 한 페이지를 맡겨주는 친절함(?)을 베풀어주고 있다. 역사와 문학을 구분하자는 살아있는 친일파들에 의해...

이인직이 쓴 신소설들에도 그의 친일파적 면모는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다. <혈의 누>, <은세계>, <귀의 성>, <치악산>, <모란봉> 등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일상을 지배하고 있던 구시대적 봉건잔재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지향점은 결국 일본이었다. 당시 수많은 개화사상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면 그의 일상은 어떠했을까? 그의 말대로 일본 천황의 통치는 그에게 늘 행복만을 가져다 주었을까? 
이인직의 대표 단편 <빈선랑의 일미인>은 친일파로서의 그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빈선랑의 일미인>은 1912년 3월1일 친일신문인 《매일신보》에 발표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전통적인 전(傳,고전문체의 하나로 특정인물의 행적을 기록하고 여기에 교훈적인 내용을 덧붙인 글)의 형태를 벗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적 단편소설의 형성과정에서 주목할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빈선랑의 일미인>의 주인공은 요즘말로 치면 국제결혼을 통해 형성된 다문화 가정의 부부로 조선인 남편과 일본인 아내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일본에서 만나 조선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 부부의 현실은 기대와 달리 가난한 삶의 연속이다. 또한 이 부부가 겪고 있는 가난은 이용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일본에서는 잘 나갔던 백수건달 남편은 친구의 얼토당토 않은 제안을 받으면서 가시적인 우정만을 확인할 뿐이다. 

"경상도 예천 벌재에 삼십육 대 장상지지가 있는데 무학의 비결 묻힌 곳을 내가 알았네. 누구든지 묏자리 구하는 사람에게 팔아서 십만 원 받거던 우리 둘이 오만 원씩 노나 먹세."
"자네 군수 한 시켜내겠나? 작자는 내가 구하여 옴세."
-<빈선랑의 일미인> 중에서-

이인직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작품배경이나 등장인물의 묘사 등에서 친일파적 성향이 짙게 느껴지는 소설이다. 다다미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일본식 집에서 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조선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병신이라느니 남편의 오래된 친구도 옷 입은 모양은 메가 뚝뚝 떨어지고 얼굴에는 미련이 덕지덕지 하고 뱃속에는 한문에 가득 든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겉으로는 국제결혼한 부부의 궁핍한 생활과 이를 이용하려는 주변인들의 탐욕스런 세태를 비판하는 것 같지만 이인직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에서 또다른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조선인으로 태어나 일본인으로 사는 이인직 자신은 부와 권력을 누렸을망정 평생 살아야했던 조선사회에서 그는 분명 비난의 대상이었고 외양만 똑같은 이방인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의 현실과 소외의식을 에둘러 표현한 소설이 <빈선랑의 일미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평생을 일본인으로 살았다. 더욱더 철저하게 자신의 몸에 흐르는 조선인의 피를 일본인의 그것으로 바꾸어가면서... 

최근에는 신소설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더불어 신소설의 대표작가로 소개되어 왔던 이인직을 새로운 신소설 작가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친일파가 한국 문학사의 대표작가 중 한 명으로 군림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학계 내부의 자성으로 보인다. 그 대표적인 작가가 구한말 애국계몽운동을 활발히 펼쳤던 <자유종>의 저자 이해조다. 그러나 이해조도 정작 일본이 조선을 강점한 이후에는 일제의 관제기관인 중추원에 몸을 담고 말았다는 사실은 여전히 씁쓸한 뒷맛만 남길 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