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 울린다. 북소리는 심장을 뛰게 한다. 북소리가 잦아들 즘 고요한 침묵을 깨는 애절한 여성의 소리가 허공을 가르고 낯익은 국악이 깔리면서 드디어 소름돋는 감동의 예고편이 시작됐다. 그대의 싸늘한 눈가에 고이는~~그만의 최저음으로 시작한 남진의 히트곡 '빈잔'은 재해석을 넘어 위대한 탄생으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강렬한 록사운드로 무장한 후반부에 접어들어서 거친 그의 고음에 TV 속 화면에는 입을 떡 벌리고 만 청중단이 클로즈업되었다. 내 귀와 눈은 평생 누려보지 못할 호사와 사치를 누리고 있었다. 미친 존재감, 이럴 때 두고 한 말임에 틀림없다.

시작부터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한때 방송이 중단되기도 했던 MBC의 주말 예능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가 '왕의 귀환'으로까지 불린 임재범의 출연으로 주말 예능의 판도를 바꿀 기세다. 최고의 가수라 부르지만 임재범의 얼굴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그의 방송출연 자체도 파격이었지만 첫 출연에서 부른 그의 히트곡 '너를 위해'는 여성들의 눈물샘마저 자극하고 말았다. 게다가 트로트를 임재범만의 스타일로 완벽하게 편곡한  '빈잔'은 넋을 잃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암투병중인 아내를 위해 출연했다는 그의 고백은 '빈잔'의 애절함을 더욱 가슴 시리게 만들었다. 

노래는 위대하다. CF 속 누구 말대로 참 좋은데..., 참 좋은데...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다. 눈물을 훔치고 넋을 놓고 있던 관객들, 그게 음악이다. 내 오늘 노래의 위대함을 보여주마! 똑부러지게 설명하지 못하는 변명이다. 임재범을 보면서 떠올린 신화 속 '명가수' 오르페우스 얘기다. 



먼저 오르페우스의 출생에 대해 알아보자.
신들의 나라 올림푸스의 주인이자 바람둥이인 제우스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쉬네와의 동침을 통해 9명의 딸을 낳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인간 세상의 예술을 담당하는 무사이(Mousai) 여신들이다. 영어로는 뮤즈(Muse)라고 하는데 음악(Music), 박물관(Museum)의 어원이 됐단다. 아무튼 9명의 자매는 각각 노래, 연극, 시, 무용 등 예술의 한 분야를 담당했는데 막내 칼리오페는 현악을 담당하는 여신이었다. '현악의 신' 칼리오페와 '음악의 신' 아폴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오르페우스다. 어미와 아비의 피를 반반씩 타고 났으니 오죽했을까? 그는 수금을 타는 최고의 '명가수'가 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오르페우스의 행적을 추적해 보자.
오르페우스는 에우뤼디케라는 처녀와 결혼했는데 신혼의 단꿈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아내 에우뤼디케는 독사에 물려 오르페우스와 영영 이별하고 만다.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하루가 멀다하고 노래와 수금 타기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오르페우스가 '명가수'라고 하지 않았던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는 오르페우스의 노래에 감동한 나머지 에우뤼디케가 있는 저승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고 만다. 

아무리 신화라지만 누구나 저승으로 갈 수 없다. 또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이 저승이다. 또 저승으로 가기 위해서는 험난한 길들을 통과해야 한다. 저승으로 안내하는 아케론강의 뱃사공 카론 영감(우리의 저승사자쯤)은 산 자를 저승으로 절대 데려가는 법이 없고 카론 영감을 설득했더라도 '통곡의 강'과 '불의 강', '망각의 강'을 건너야만 한다. 그러나 오르페우스의 노래에 저승을 지키는 사자들은 어처구니없게도 자신들의 본분을 망각하고 만다. 드디어 오르페우스는 저승의 신 하데스가 지키는 지옥에 도착했다.

도대체 오르페우스의 노래실력이 얼마나 뛰어났으면 하데스마저 감동하고는 아내 에우뤼디케를 데려가도록 허락하고 만다. 그러나 신화에는 늘 댓가가 있다. 에우뤼디케를 데려가는 대신 지옥의 문을 벗어날때까지 아내의 얼굴을 봐서는 안된다는 미션이 주어진다. 신화를 읽어본 독자라면 이쯤에서 오르페우스의 미래를 쉬 예상할 것이다.

아내에 대한 사랑 때문에 저승까지 간 오르페우스가 아니었던가! 오르페우스는 미치도록  아내가 보고 싶었다. 하데스의 미션을 잊어버린 건 아니지만 어찌 사랑의 열정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오르페우스는 뒤따라오는 아내가 너무도 궁금해 잠깐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순간 아내 에우뤼디케는 어찌 손쓸 틈도 없이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사랑이 뭐길래....

어쩔 수 없이 혼자 돌아온 오르페우스는 이때부터 저승의 신들을 원망하면서 아내 에우뤼디케를 그리면서 다시 수금을 타고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그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산천초목이 울렸고 뭇 처녀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일편단심. 오르페우스에게 여자란 에우뤼디케 딱 한 명뿐이었다. 이는 가혹한 운명의 전조였다. 아무리 구애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오르페우스에게 경멸감을 느낀 처녀들은 수금소리가 들리지 않게 한 다음 창으로 오르페우스를 찌르고 몸을 갈기갈기 찢어 강에 내버리고 말았다. 

오르페우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안 무사이 자매들은 막내 에우뤼디케의 남편인 오르페우스의 시신을 수습해 무덤을 만들어 주었고 제우스는 오르페우스의 수금을 거두어 별자리(거문고 자리?)로 박아 주었다고 한다. 

이제 알았는가! 노래는 이런 것이다.
 
그러나 남성들이여! 노래방에서 섣불리 임재범의 노래를 부르지 말지어다. 여성들이 보는 노래방 꼴불견 1위란다. 당신은 임재범이 아니니까...ㅎㅎ..

*오르페우스 이야기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저자 이윤기 선생의 해석을 따랐습니다.


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