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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따따부따

암(癌)보다 더 무서운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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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목요일에 동생한테서 문자가 한 통 왔다. 어머니가 며칠째 배가 아파서 병원을 찾았는데 대장이 혹들이 지나치게 많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담당의사는 큰 병원에서 다시 한 번 검진받아보라고 했단다. 어머니는 암일 거라는 생각에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겁이 나셨던지 이후 담당의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고 한다.
결국 그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하고 일주일 후에 결과가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집에 오셨단다. 동생은 집에 오신 어머니가 제대로 드시지도 못하고 연신 눈물만 흘리고 계신 모습이 안스럽고 답답해서 나에게 문자를 보냈던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걱정할까봐 동생에게는 전화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던 모양이다. 


동생 문자를 받고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당장이라도 전화를 해야할지 아니면 결과가 나온 후에 전화를 해야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내 전화가 오히려 어머니의 걱정과 불안을 더 가중시키지는 않을까 해서다. 사실 어머니는 몇 년전 유방암 수술을 받으셨다. 어머니가 처음 유방암 선고를 받았을 때 며칠 동안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고 몰래몰래 눈물만 훔치시곤 했다.
어머니에게 암은 불치병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다행이 유방암 초기라 암세포 제거 수술을 받고는 완치는 되셨지만 암세포의 재발과 전이를 막기 위해 일 년이면 몇번씩 검사를 받기 위해 서울을 찾고 계신다. 당뇨와 골다공증을 앓고 계신 어머니에게 서울행 기차는 여간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검사를 받으러 서울에 올라가실 때마다 동생 부부가 모셔다 드린다고 하지만 어머니는 늘 손사래를 치면서 당신 혼자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곤 하신다. 목포에서 서울까지 짧지 않은 시간을 자식들 걱정할까봐 늘 혼자 다니시는 모습에 내 마음 한구석에는 늘 죄스러움이 남아있다.


마냥 조직검사 결과만을 기다릴 수도 없고 나 또한 좌불안석인지라 지난 일요일에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일요일 아침이라 집에 계시겠지 하고 집으로 전화를 했지만 몇번이고 벨소리만 울릴 뿐 통화가 되지 않았다. 다시 어머니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지만 역시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음성 메시지만 돌아올 뿐이었다. 하루 이틀새 더 악화된 건 아닌지 ... 몇 번을 더 집전화와 핸드폰을 통화를 시도한 끝에 어머니와 통화가 되었다. 집에서 당신 혼자 걱정하실까봐 친구분이 마실 오라고 하는데 어머니께서는 영 내키지 않으신지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하신다.

"어디 다녀오셨어요? 계속 통화가 안되서..."
"엄마 친구가 마실오라고 하는데 영 마음이 불안해서...엄마 친구 전환 줄 알고 안 받았다."
"좀 어떠셔?"
"너 걱정할까봐 연락하지 말라고 했는데..."
"무슨..내가 전화하면 엄마 더 걱정할까봐 망설이다 안되겠다 싶어 전화했어요."
"다 늙어서 무슨 조환지 모르겠다. 자식들 걱정이나 하게 하고..."
"그런 말이 어딨어?..."
"한꺼번에 걸려서 빨리 죽던지,... 하나 둘 찾아와서...."
"아직 결과도 안나왔는데, 그리고 단순한 복통일 수도 있는데 지레 짐작으로 그러지 마셔...별 거 아닐거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엄마 친구분하고 가까운 데라도 다녀오세요."

5분 남짓 통화에서 전화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떨림이 느껴졌다. 조직검사 결과가 목요일에 나온다는 데 어떻게 그때까지 기다리나....전화를 끊고 연신 담배만 피워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어제 저녁에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결과를 기다리며 날마다 불안해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동생이 어제 병원엘 찾아갔나보다. 암은 아니라고 했단다. 그리고 지난주에 어머니가 병원에 가셨을 때 유방암은 대장으로 전이되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렸단다. 큰 병원으로 가시라고 한 것도 대장에 단순한 혹들이 너무 많아 작은 병원보다는 큰 병원에서 제거 수술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단다.
당시 어머니는 대장에 혹이 발견되었다는 담당의사의 말에 암이라고 생각하시고는 당황한 나머지 이런 얘기들을 제대로 듣지 못했던 것이다. 어머니 목소리가 한층 밝아지셨다. 나도 목요일까지 어떻게 기다리나 싶었는데...또 혹시라도 암이라고 하면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우주가 선물한 가장 아름다운 단어, 어머니.
신이 과연 존재한다면 따지고 싶다. 곱기만 하던 얼굴에 그 흔한 분칠할 여유도 없이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희생해야만 했던 어머니에게 이런 모진 세월이 추억이 되어야 할 노년에 왜 이런 가혹한 시련을 안겨 주어야만 하는지...

내게는 어머니에게 찾아온 암(癌)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얼굴 여기저기에 패어가는 골만큼이나 깊어지고 있는 어머니의 약해져 가는 모습이다.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그런 어머니의 뒷모습에는 여전히 자식들을 향한 걱정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혹시나 당신이 자식들에게 피해만 주는 건 아닌지...그래서 늘 잔병치레 할 바에는 빨리 죽어야지 하고 말씀하신다.
이게 이 땅을 사는 어머니들의 숙명이란 말인가! 평생 자식들에게 바친 사랑의 단 1%도 돌려받지 못하고 가실 거면서...어머니는 그 1%도 안되는 자식들의 보은마저도 마음 편히 받아들이지 못하니 말이다. 아무리 당당해도 지나치게 매몰차도 '어머니'라는 단어 앞에 세상 어느 누가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있을까?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목요일 아침이다. 어머니께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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