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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전향 때문에 애인을 배신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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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소설] 중 김남천의 『경영』/「문장」19호(1940.10)/창비사 펴냄

앞서 김남천의 소설 『처를 때리고』에서 어느 전향 지식인의 현실과 타협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김남천 또한 일제의 사상탄압의 와중에 전향서를 쓰고 병보석으로 풀려났다는 점도 살펴 보았다. 김남천의 전향은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위장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김남천이 전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1940년 「문장」지에 발표된 『경영』이다. 

사회주의 운동으로 수감중인 오시형, 양가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시형을 헌신적으로 보살펴 온 애인 최무경, 이 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김남천은 이들의 사랑을 통해 무엇을 얘기하려 했을까? 비록 보호관찰이기는 하지만 최무경의 노력으로 오시형은 수감생활을 청산하게 되고 최무경이 마련한 아파트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다. 처음에 이 둘의 결혼을 반대했던 어머니도 딸의 노력에 감복해 결혼을 허락한 상황에서 최무경은 오시형과의 결혼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시형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다른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것이 전체 줄거리이다.

'동양론'과 전향

오시형의 변화는 그가 최무경에게 설파한 자신만의 이론에서 감지된다.

"가령 동양이라든가 서양이라든가 하는 개념도 로마의 세계에서 성립된 것이고, 또 고대니 근세니 하는 특수한 시대 구분도 근세의 구라파 사학에서 성립된 구분이니까, 이런 것에서 떠나서 동양과 동양세계를 다원사관의 입장에서 새로인 반성하고 성립시킬 필요가 있지 않은가. 이것은 동양인의 학문적 사명입니다. 동양인 학도가 하지 않으면 아니될 의무입니다." -『경영』 중에서-

즉 일원사관에서 다원사관으로의 사상변화를 의미한다.  여기서 '동양론'이 의미하는 것은 가족중심의 전통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봉건적 가치관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일제의 '대동아 공영론'에서 보듯 동양론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로써 오시형의 '동양론'은 제국주의 일본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동시에 사회주의 사상의 포기를 의미한다.


'동양론'의 설파 이후 오시형의 전향은 빠른 속도로 구체화된다. 일제에 협력하였음직한 지방 유지였던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은 오시형의 전향의지가 확고해졌음을 보여준다. 급기야 아버지가 정해둔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가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 김남천의 전향에 대한 시각은 뚜렷해진다. 오시형이 전향하는 순간 애인을 배신했다는 점은 김남천이 전향에 대해 어떤 정당성도 부여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어머니의 재혼

소설『경영』에는 전향 소설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최무경 어머니의 재혼이 비중있게 다뤄진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 할만한 어머니의 재혼이 소설 속에서 내포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전향과 재혼이 의미하는 공통점은 변화의 순간이면서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최무경을 둘러싼 애인과 어머니의 전향과 재혼은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전향의 부당함을 부각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여자로서의 살의 냄새를 잃지 않은 어머니를 느끼한 군침이 입안에 도는 것처럼 참을 수 없었던 최무경은 스물에 홀몸이 되어 딸만을 위해 청춘을 불사르고 화려한 꿈을 짓밟아버린 어머니에게 재혼을 반대할 어떤 명분도 찾지 못한다. 한편 최무경은 옛날 영웅심리를 향락하면서 징역을 살던 기분이 없어졌다는 오시형의 전향과 배신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저자는 미래지향적 의미의 어머니 재혼을 과거로 회귀하려는 오시형의 전향과 대비시켜려 했던 것은 아닐까?

오직 한 남자만을 위해 헌신했던 최무경이 애인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방도, 직업도, 이제 나 자신을 위하여 가져야겠다'고 다짐하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오시형의 배신과 전향이 더욱 비열한 모습으로 추락하고 만다. 오시형의 존재감마저 불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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