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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방란장 주인' 마침표(.)가 단 하나뿐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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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소설] 중 박태원의 『방란장 주인』/「시와소설」1호(1936.3)/창비사 펴냄

 

노래 부를 때 뿐만 아니라 책도 읽다 보면 호흡이 필요할 때가 있다. 호흡의 길이는 읽는 이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적절한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호흡은 책의 이해도를 높이고 내용의 흐름을 원활하게 연결시켜 준다. 또 호흡은 저자의 의도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호흡은 대략 한 문장이 끝나거나 길지 않은 문단이 끝났을 때가 대개는 적절한 타이밍으로 여겨진다. 여기 언제 호흡을 가다듬어야 할지 적절한 타이밍을 혼란스럽게 하는 소설이 있다. 박태원의 소설 『방란장 주인』이 그것이다.

 

『방란장 주인』은 단 한 문장으로 된 단편소설이다. 아무리 단편소설이라지만 어지간한 필력으로는 소화해 내기 힘든 5,558자에 이르는 소설이다. 200자 원고지로도 대략 30장 내외가 될 터인데 단 하나의 마침표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저자의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밖에국내 뿐만 아니라 외국 소설에서도 여태 보지 못했던 특이한 구조라 처음 읽을 때는 호흡할 타이밍을 잡지 못해 더없이 혼란스럽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글인 한글이 뛰어난 탓인지 두 번 세 번 읽을 때는 내용의 전개에 따라 자연스레 끊어 읽는 요령이 생기게 될 것이다.

 

책의 해설 부분에 따르면 박태원의 초기 작품들은 기법을 중요시 했다고 한다. 단 한문장의 『방란장 주인』은 박태원 실험소설의 대표작으로 그가 굳이 한 문장으로 소설을 써야만 했던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자는 소설 기법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방란장 주인』을 읽어본 독자라면 시선을 딴 데로 돌릴 여유를 갖지 못했음을 느꼈을 것이다. 또 이는 신경이 날카로워 지기도 하지만 소설의 문장에 몰입하게 되는 효과를 준다. 쉼표만 장황하게 연결된 문장에서 호흡 타이밍을 잡지 못한 채 소설의 내용에는 무관심해 진다. 아니 내용을 파악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 오로지 소설 기법에만 정신이 쏠리고 만다. 결국 여기서 소설의 새로운 기법에 관심을 보였다는 저자의 의도는 소기의 성과를 걷었다고 할 수 있다.  

 

또 단 한 문장의 실험은 2년여에 걸친 시간의 흐름을 단 몇 시간으로 때로는 소설을 읽는 시간만큼으로 단축시켜 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착각은 소설 속 주인공과 독자의 거리를 좁혀주고 읽는 이로 하여금 주인공과의 독자의 관계를 혼동하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내용이 아닌 문장에 몰입하다 보니 일대 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고독의 극대화

 

『방란장 주인』의 내용은 이렇다.

방란장이란 카페를 차린 젊은 화가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화려한 영업을 시작한다. 물론

주인공인 젊은 화가는 허름한 자신의 카페가 예상 외의 손님들로 북적이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철길 건너에 모나미라는 카페가 들어서면서 방란장매출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고 심지어 일을 도와주는 미사에의 월급마저 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빚쟁이들마저 드나들면서 가난은 젊은 화가를 무기력증에 빠지게 한다.

 

그는 예술가의 삶과 일상에서의 도피를 꿈꾼다. 도피의 방법으로 미사에와의 결혼도 생각해 보지만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무기력한 삶은 가난과 맞물려 방황의 시간만 연장시킬 뿐이다. 무기력한 예술가로서, 일상인으로서 게으름에 익숙해진 그는 예술에 정진하고 있는 수경선생에 대해 한없는 부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수경선생이 부인의 히스테리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 그는 한없는 고독을 느끼게 된다. 미사에와의 결혼도 무기력한 삶에 대한 도피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그의 고독은 더욱 처절하게 다가온다.

 

방랑장의 젊은 주인은 좀더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하고, 거의 달음질을 쳐서 그곳을 떠나며, 문득, 황혼의 가을 벌판 위에서 자기 혼자로서는 아무렇게도 할 수 없는 고독을 그는, 그의 전신에, 느꼈다… -『방란장 주인』 중에서-

 

이 순간 소설은 끝이 나고 드디어 장황했던 문장에 마침표가 붙게 된다. 여기서 독자들은 젊은 화가의 고독에 더욱 강렬한 충격을 받는다. 즉 지루한(?) 문장에 드디어 호흡할 순간을 맞이한 독자에게 마침표와 함께 표현된 젊은 예술가의 고독은 긴 여운으로 남게 되는 효과를 거둔다.

 

또 끝나지 않는 긴 문장은 젊은 예술가가 느끼는 무기력의 시간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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