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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10만원 빌려 51만원 갚고 파산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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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의 <두 파산>/1949년

"근대법에서 돈을 빌리는 것에 대해 위법한 이율을 부과하는 행위. 근대사회에 있어서도 금융기관의 기능이 미흡할 때, 자본축적이 미약한 저개발국가에서 투자수요를 충족할 수 없을 때, 금융기관의 금리수준이 현실과 차이가 많아 자금수급이 원활하지 못할 때 사금융이 발달하여 고리대는 계속 존재한다."

다음백과사전에는 '고리대금'이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었고 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고리대금이다. 흔히 사채라 부르는 개인간 금융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합법을 가장한 고리대금업이 성행하기도 한다.

길 건너로 여자중학교와 국민학교가 있는 네거리 문방구. 도대체 이 작은 문방구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일년 반만에 주인이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을까?  염상섭의 『두 파산』은 누구에게나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는 문방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평화롭게만 보이는 문방구를 둘러싼 공기는 차갑기만 하다. 고리대금의 그림자가 이 문방구를 짙게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고발하고자 하는 것은 정작 고리대금이 아니라 돈으로 상실되어가는 인간성이다. 

10만원 빌려주고 51만원 뜯어낸 고리대금의 실체

정례 모친은 남편을 졸라 집을 담보로 30만원의 대출을 받아 원래 선술집이었던 점방을 월세 8천원에 얻어 문방구를 운영하고 있다. 정례 모친의 말대로 이 문방구는 죽쑤어 개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정례 모친이 오랜 친구이자 고리대금업자인 김옥임이라는 여자와 동업 아닌 동업을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정례 모친의 문방구가 파산하는 과정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고리대금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문방구가 파산하는 과정은 이렇다.

김옥임은 동업 조건으로 10만원을 투자해 매월 20%의 배당을 받기로 했다. 9달 동안 정례 모친이 김옥임에게 준 돈만 18만원이었으니 문방구 운영은 쪼달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례 모친은 동업을 포기하고 대신 김옥임에게 8만원짜리 임대차 계약서를 담보로 매월 15%의 차용증을 써주고 만다. 또 옥임의 소개로 알게 된 전직 교장이라는 사람에게 5만원을 빌려 기울어가는 문방구를 살리기 위해 만회책을 세웠다. 옥임과의 관계도 멀어지고 장사도 여의치 않았던지 옥임에게 보내야 할 이자가 8달째 밀리고 말았다. 옥임에게 갚아야 할 돈이 원금 10만원에 이자 12만원을 합쳐 22만원으로 불어난 것이다.

옥임과 교장 사이에도 돈거래가 있었던지 옥임은 이 22만원을 교장에게 치러달라고 넘겼다. 결국 정례 모친은 2만원은 현금으로 주고 옥임에게 갚아야 할 나머지 20만원에 대해서는 10% 이자를 조건으로 한 차용증을 교장에게 써준다. 이마저도 3달 동안 이자만 6만원이 쌓여 26만원으로 불어나고 만다. 어쩔 수 없이 정례 모친은 보증금과 점방 설비와 남은 물건을 처분해 옥임의 권리금으로 5만원을 더 얹어서 교장 영감에게 문방구를 넘기게 된다. 결국 정례 모친은 옥임에게 10만원을 빌려 1년반 사이에 51만원을 갚는 것으로 문방구 사업을 접게 된 것이다. 

왜 '두 파산'이었을까?

정례 모친의 문방구 처분과 함께 소설은 끝을 맺는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저자는 왜 제목을 '두 파산'이라 하였을까? 저자는 문방구의 파산을 통해 옥임과 교장의 윤리의식이 파괴되어가는 과정을 묘사했다면 정례 모친과 부친의 옥임에 대한 복수 계획, 즉 옥임의 파산 음모를 살짝 내비침으로써 정례 부모도 돈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의 현장을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몸저 누운 아내를 위로하는 정례 부친의 말에 정례 모친은 말리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부채질하는 것도 아닌 소리를 하며 남편의 거사를 듣고만 있다. 

"김옥임이도 요사이 자동차를 놀려보구 싶어한다는데 마침 어수룩한 자동차 한 대가 나섰단 말이지. 조금만 참어요. 우리 집문서는 아무래두 김옥임 여사의 돈으로 찾아놓고 말 것이니...."

현실의 파산과 미래의 파산 음모가 '두 파산'으로 그려지고 있다. 

염상섭의 소설 『두 파산』이 1949년 『신천지』38호에 실렸다고 하니 고리대금의 실태와 그 피해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최근에는 빌려준 돈을 받아내기 위해 신체포기각서라는 것까지 횡행하고 사채빚으로 유명 연예인이 자살한 사건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서민경제 붕괴라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고리대금업을 포함한 사금융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말고는 그 대안이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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