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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여행지에서 뿔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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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31일이면 찾는 산이 있다. 옥천에 있는 장령산이다. 휴양림이 잘 가꿔져 있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이 일 년을 맞이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대전에서 그리 멀지 않아 1박2일 일정으로 쉬고 오기에도 좋다. 몇 년전 대전 근교 다른 여행지에서 연말연시를 보낸 적이 있긴 한데 아무리 시간과 비용, 시설 등을 따져봐도 장령산만 못했다. 또 가까운 곳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데는 모임 회원들 대부분이 산을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한몫하고 있다.

올해는 다들 시간이 여의치 못해 매년 12월31일에 떠나던 여행을 1월1일로 하루 늦춰야만 했다. 다소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어찌됐건 올해도 거르지 않고 회원들간 친목을 다질 수 있어 다행이라고 서로들 위안했다. 며칠간 눈이 많이 내려 걱정하기도 했지만 도로 상태가 생각보다 양호한 탓에 출발한지 채 1시간도 못되어 장령산에 도착했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장룡산(長龍山)으로 알고 있었고 안내 표지판에도 그렇게 표기되어 있어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올해 보니 장령산으로 바뀌어 있었다. 돌아올 때 안 사실인데 1999년부터 국립지리원 중앙지명위원회에서 장령산(長靈山)으로 지명을 개정 고시했단다. 관계자 말로는 오래 전부터 장룡산이라고 불러 사람들이 바뀐 지명을 모르고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동안 방문할 때마다 안내 표지판이고 팜플렛에는 장룡산이라고 표기되어 있었으니 결국엔 군당국의 홍보가 소홀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원래는 '숲속의 집'이라는 펜션들만 있었는데 2년전 왔을 때 새로 건물을 짓느라 한창이던데 올해 와보니 다 완공되어 '산림문화휴양관'이라는 이름으로 세미나실까지 갖춘 휴양지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가 올해 예약한 곳도 '산림문화휴양관'으로 정지용의 시에서 따온 '바람'실에서 1박을 하게 되었다. 참고로 시인 정지용의 고향이 바로 이곳 옥천이다.

매년 오는곳이지만 여행이 주는 설레임은 나이가 들어도 어쩔 수 없나보다! 이 설레임은 '바람'실에 들어서자마자 짜증으로 변하고 말았다. 분명 8인실인데 식탁에는 의자가 4개뿐이었다. 우리 일행은 6명으로 좀 더 넉넉한 방을 쓰기위해 추가요금을 부담하고 8인실로 예약했는데 그래도 의자가 2개나 부족했다. 그러나 새해 첫날부터 뿔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머그잔도 8개, 접시도 8개, 밥공기도 8개....8인실의 구색이 갖춰졌는데 유독 식탁 의자만 4개였다. 의자 2개를 더 구하기 위해 관리 사무소에 전화했다. 안된단다. 그럼 앉은뱅이 탁자(좌식)라도 달라고 했다. 그것도 안된단다. 세미나실 의자라도 빌릴 수 있냐고 했다. 그것도 역시 안된단다. 안되겠다싶어 관리 사무소에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새해 첫날이라 여행기분을 망치지는 않을까 우려했던지 일행 중 제일 큰형님이 그냥 바닥에서 해결하자고 했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니었다. 우리 다음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정식으로 항의하고 시정할 건 시정하게 해야겠다싶어 관리 사무소로 찾아갔다. 

 

"8인실인데 식탁의자가 달랑 4개면 어떻게 식사를 하라는 거죠?"
"4분씩 차례로 드시면..."
"그게 말이 됩니까? 같이 즐기고 같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왔는데 따로따로 식사하리니요..."
"지금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일부러 추가요금까지 내고 8인실로 왔는데..이렇게 하시면 안되죠"
"옥천군에서 위탁받아 하는거라 저희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아마 공간을 늘리기 위해 그렇게 만든 것 같은데..."
"그럼 우리뿐만 아니라 전에 왔던 사람들도 항의를 했다는 거네요? 공간이 문제라면 앉은뱅이 탁자라도 갖다놓으면 되잖아요. 맨바닥에서 밥을 먹으라니 어느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네..."
"그렇다면 빨리 시정했어야죠. 우리도 매년 여기에 오고 있는데..."
"얘기해서 꼭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못내 씁쓸하기는 했지만 기분도 기분인지라 여기서 끝냈다. 대신 시정하겠다는 다짐은 다시 한번 받아뒀다. 물론 관리 사무소에서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만 다른 여행객들도 항의를 했다고 하니 군에 전달되어 내년에는 바뀌겠지 믿기로 했다.

물론 여행와서 집처럼 편할 수도 없거니와 또 여행지에서의 고생이 추억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말로만 듣던 우리 공직사회의 탁상행정을 눈으로 확인하고 보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정도 클레임도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닐텐데...결국 우리는 맨바닥에서 식사를 해결해야했다. 새해 첫날이니 뿔난 마음 추스리고 웃을 수 밖에...

별 것 아닐 수도 있는데 해마다 찾는 곳이고 애정이 있어 더욱 화가 났던 모양이다. 여행객의 편의를 좀 더 세심하게 살피지 못해 화가 나긴 했지만 장령산 자연휴양림은 여전히 추천할 만한 곳이다. 특히 숙소 창문에 정지용의 시를 새긴 아이디어는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소나무와 전나무 숲 사이로 난 산책로는 휴양지로서 손색이 없다. 숙소 아래로는 작은 계곡이 흐르고 있어 정지용의 시 '향수'를 흥얼거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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