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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배꼽빠질 상상, 헤라클레스는 여장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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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 2편의 테마는 사랑이다. <사랑의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저자는 독자들에게 신과 신, 때로는 신과 인간과의 사랑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통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던져주고자 한다.

왜 하필 저자는 신화를 이해하는 도구로 사랑을 선택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인간은 남녀의 사랑으로 세상에 방문하고 신의 사랑으로 세상과 작별을 고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생명의 근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보편적인 정서가 사랑이다. 상징으로서의 신화를 설명하기에 사랑만한 것이 있을까?

이쯤되면 신화 속 신들의 사랑이 궁금해질 것이다. 인간의 그것과는 어떻게 달랐을까?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러브스토리를 공개한다.

신들은 어떤 사랑을 했을까?

종교적인 의미에서 신은 엄숙함과 경건함으로 바라보는 경외의 대상이다. 범접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렇다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도 이런 대상이었을까? 아쉽지만 애시당초 기대는 접어두는 게 좋겠다.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들은 우리가 머리 속에 그리는 그런 신들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던 것 같다. 바람둥이난봉꾼이며 사랑 또한 난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비바람과 번개를 일으키고 온갖 사물을 변신케 하며 축지법을 쓰는 등 잔재주(?) 부리는 것 빼고는 인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리니 별의별 사랑이 다 등장할 수 밖에....신들의 사랑은 이러했다.

제우스의 심부름꾼이자 신들 중 유일하게 지하세계를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었던 헤르메스는 암염소와의 사랑으로 반인반수의 (Pan)을 낳았다고 한다. 스뮈르나는 아버지를 짝사랑해 어버지가 술에 취한 틈을 타 동침을 해서 임신까지 했다고 한다. 태양신 아폴론은 아름다운 청년 휘아킨토스를 사랑했단다. 남자를 밝혔던 아폴론은 급기야 아들 퀴크노스까지 사랑했다고 하니 아무리 신이라지만 해도해도 너무한다.

신들의 별의별 애정행각은 이게 다가 아니다. 중증 왕자병 환자도 있다. 대충 짐작이 갈거라 생각된다. 바로 자신을 사랑하다 죽은 나르키쏘스. 나르키쏘스의 왕자병은 그를 짝사랑했던 숲의 요정을 목소리만 남기고 사지를 앗아가 버렸다. 이 비운의 숲의 요정이 바로 에코(메아리)란다.

신들의 애정행각 중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에피소드는 따로 있다. 상상할수록 배꼽이 빠질것만 같다. 강한 남성의 표상 헤라클레스다. 헤라클레스는 옴팔로스 왕국의 여왕 옴팔레와 사랑할 때 서로의 옷을 바꿔입고 손발이 오그라들 애정행각을 벌였다고 한다. 여장을 하고 궁을 돌아다니는 건 예사였다고 한다.

이밖에도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와는 반대의 사랑을 한 엘렉트라 등 신들이 벌이는 별의별 사랑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왜 마치 19금 케이블 채널을 돌리는 것처럼 낯뜨거운 신들의 애정행각을 한 권의 책으로 엮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을까? 앞서 얘기했듯이 상징으로서의 신화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헤라클레스는 왜 여장을 했을까?

앞서 언급한 신들의 애정행각이 보여주는 상징을 논하기 전에 미리 알아야 할 게 있다. 신은 인간을 창조했다. 그런 신을 창조한 건 인간이다. 인간이 없었다면 신은 존재하지도 나타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신화에는 인간들의 삶이 투영되어 있다. 이 정도의 상식만으로도 우리는 신화의 상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신화는 상징이라는 말만 할 뿐 그 상징의 구체적인 언급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말을 아끼고 있다. 신들의 사랑을 단순한 불륜이나 엽기행각으로 보지 않고 그 속에서 그런 사랑들이 의미하는 상징을 찾기 위한 노력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 ? 신화가 보여주는 상징은 신화를 읽는 독자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헤라클레스의 여장 행각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준다. 그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의 또 다른 테마가 헤라클레스라는 복선은 아니었을까?

헤라클레스는 이피토스라는 청년을 위해 성벽 위에서 크게 잔치를 벌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술에 취한 헤라클레스는 이피토스를 성벽 아래로 던져 죽이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의 이런 광기는 헤라 여신의 저주에서 비롯됐는데 남편인 제우스가 바람을 피워 낳은 자식이 바로 헤라클레스이기 때문이다.

술이 깬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델포이로 가서 아폴론의 여사제에게 자신의 이런 죄를 씻을 방도를 묻게 된다. 델포이의 신탁은 옴팔로스 왕국의 여왕 옴팔레 밑에서 종살이를 하라는 것이었다.

헤라클레스의 여장행각은 바로 인간과 삶의 근원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는 여장을 통해 남성과 여성, 미움과 사랑, 삶과 죽음과 같이 서로 상극된 관념들과의 화해를 시도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얘기하는 상징이다.

고대인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신들을 난봉꾼으로 만들었을 리 없다. 신화라는 미궁 속으로 들어가는 독자들만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얻을 수 있다는 점 명심하자. 이제 우리는 위대한 이야기꾼 이윤기 선생이 보여준 신들의 별의별 사랑 이야기에서 나름의 싱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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