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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자그레우스를 '첫 번째 디오니소스'라고 부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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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미오스(거칠고 소란스러운 자), 리아에우스(시름을 덜어주는 자), 니텔리우스(밤에 얼굴을 붉히는 자), 이아쿠스(부르짖는 자), 마이노미노스(광기를 불어넣는 자), 오르토스(일으켜 세우는 자), 폴리노고스(거듭 태어난 자), 안트로포라스토스(살인자) ...... 이 이름들의 공통점은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를 부르는 별칭들이다. 과연 술의 신답지 않은가? 또 술의 특징이 집약된 별칭이지 않은가? 특히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별칭 중 '살인자'라는 의미의 '안트로포라스토스'는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음주운전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디오니소스를 '자그레우스(영혼의 사냥꾼, 잔인한 사냥꾼)'이라고도 부른다. 출처>구글 검색


그리스 신화에서 별칭이 많기로 유명한 디오니소스는 '영혼의 사냥꾼', '잔인한 사냥꾼'이란 뜻의 '자그레우스(Zagreus)'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야말로 잘못 마신 술은 영혼의 사냥꾼이자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일깨우는 마약과도 같다는 뜻일까?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서 자그레우스(Zagreus)는 소년 신이자 전원의 신이다. 디오니스소의 별칭 중 하나가 자그레우스이지만 반대로 자그레우스를 '첫 번째 디오니소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그레우스를 이렇게 부른 데는 소년 신 자그레우스에 얽힌 끔찍한 신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난봉꾼 제우스의 불륜 행각은 신과 인간을 넘나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딸마저도 겁탈하는 패륜적 행각도 마다하지 않았다. 제우스는 데메테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페르세포네도 겁탈했다고 한다. 페르세포네의 미모에 반한 제우스는 뱀으로 변신해 페르세포네와 결합해서 아이를 하나 낳았는데 그가 바로 자그레우스였다.  제우스는 자그레우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자그레우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바로 정실부인 헤라의 질투였다. 제우스의 바람으로 태어난 자식들이 마치 통과의례처럼 겪어야만 하는 과정이 바로 헤라의 질투와 복수였다. 


자그레우스가 태어나자 제우스는 헤라의 질투를 피하기 위해 아폴론과 쿠레테스에게 맡겨 파르나소스의 숲속 동굴에서 키우게 했다. 제우스가 신 중의 신이듯 헤라 또한 제우스의 아내였다. 아무리 꽁꽁 숨겼다지만 헤라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헤라는 티타네스(남성 티탄, 여성 티탄은 티타니데스라고 부른다)를 시켜 자그레우스를 잡아오게 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고 했다. 자그레우스의 변신술도 아버지 제우스 못지 않았다. 자그레우스는 사자, 뱀, 호랑이, 황소 등으로 변신하며 헤라의 질투를 모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신이라지만 자그레우스도 아이는 아이였다. 티타네스가 선물로 준 거울의 신기함에 빠져 아이처럼(?) 즐거워하다 그만 티타네스에게 잡히고 말았다.


자그레우스를 붙잡은 티타네스는 그를 갈기갈기 찢어 일부는 날로 일부는 익혀서 먹어 버렸다. 그나마 자그레우스의 남은 유해는 아폴론이 모아서 델포이 근처에 묻어 주었다고 한다.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 했던 제우스는는 자그레우스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제우스는 자그레우스를 살려내기로 결심하고 자그레우스의 심장을 자신의 또 다른 연인 세멜레에게 먹였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신이 바로 디오니소스였다. 제우스와 자그레우스의 심장을 먹은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를 ' 두 번째 디오니소스'라고 불렀다. 자연스럽게 죽기 전 자그레우스는 '첫 번째 디오니소스'가 되었다. 한편 자그레우스의 심장은 세멜레가 아닌 제우스 자신이 직접 먹고 세멜레와 결합해 디오니소스를 낳았다고도 한다. 


자그레우스는 오르페우스교의 신으로 위와 같은 자그레우스에 관한 전설은 오르페우스 비교의 교리에 속한다. 즉 오르페우스교에서는 자그레우스와 디오니소스를 동일시 했다고 한다. 한편 오르페우스교에서는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를 포도주의의 신 디오니소스의 환생이라고 믿었다. 반대로 자그레우스 신화를 처음 언급했던 그리스의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는 자그레스를 '지하의 제우스'라 부르며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와 동일시 했다. 


어쨌든 현실의 술만큼이나 신화 속 술에 얽힌 이야기들은 끔찍하고 잔인하다. 어린 아이의 심장을 먹고 태어난 신이 술의 신이었다니 신화의 메타포는 때로 잔인하기 그지 없다. 경각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옛 사람들의 지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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