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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폴리네시아

죽음도 막지못한 사랑, 히쿠와 카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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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초월적 힘이 발휘되는 신화지만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법칙이 하나 있다. 흔히 지하세계로 표현되는 죽음이다. 지상과 천상에서 최고의 권위를 누리는 신일지라도 지하세계만은 간섭할 수 없다. 물론 한번 지하세계(죽음)로 내려가면 다시는 이승으로 되돌아올 수 없다. 다만 예외는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연인 에우리디케를 찾아 지하세계로 내려간 오르페우스가 있고, 데메테르가 딸 페르세포네를 찾아 지하세계로 내려간 적이 있다. 마야 신화에서는 스발란케와 우나푸 쌍둥이가 지하세계인 시발바를 처들어가 죽음의 신들을 물리친 일도 있다. 그 중에서도 헤르메스가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세계 신화를 통틀어 봐도 헤르메스처럼 지하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신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어쨌든 헤르메스를 제외하곤 지하세계를 방문했던 대부분의 신들은 당초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했거나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다. 죽음이란 신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아름다운 휴양 섬 하와이 전설에도 지하세계로 내려간 신이 있다고 한다. 하와이 섬 후알랄라이 산에 살았던 히쿠(Hiku)의 이야기다. 히쿠는 산 정상 동굴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히쿠는 누가 봐도 한눈에 반할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산 아래로 한번도 내려가 본 적이 없었던 히쿠는 산 아래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참을 수 가 없었다. 어느날 히쿠는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태어나 처음으로 후알랄라이 산을 내려오게 되었다. 히쿠에게는 '푸아 네(Pua Ne)'라는 특별한 활이 하나 있었다. 푸아 네는 히쿠가 원하는 표적은 무엇이든 명중시키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지하세계에 떨어진 카웰루의 영혼. 출처>구글 검색


히쿠가 후알랄라이 산을 내려온 이유가 산 아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었지만 신화를 읽어본 독자라면 앞서 히쿠의 외모에 관한 언급에서 산 아래 세상에 그에 걸맞는 아름다운 여인이 살고 있었을 것이라는 예측을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산 아래에는 카웰루(Kawelu)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살고 있었다.


히쿠는 원하는 곳을 향해 화살을 날리며 산 아래 세상을 만끽했다. 실수였을까 아니면 의도적이었을까 히쿠의 화살이 코나족 족장 집 우물가에 떨어지고 말았다. 카웰루는 바로 코나족 족장의 딸이었다. 히쿠가 화살을 찾으러 들어갔을 때 카웰루는 보자마자 히쿠에게 연정을 품고 말았다. 카웰루는 히쿠를 자신의 집에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해 잽싸게 화살을 숨겼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화살인지라 히쿠는 화살을 찾을 때까지 카웰루 집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히쿠가 자신의 화살을 발견했고 히쿠는 카웰루가 자신을 속였다며 크게 화를 내고는 그 집을 나와 버렸다. 히쿠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던 카웰루는 이 사건이 있은 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뒤늦게 카웰루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안 히쿠는 자신 때문에 죽은 카웰루를 살려내고 싶었다. 결국 히쿠는 카웰루가 잠들어 있는 지하세계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카웰루의 영혼을 발견하고는 죽은 시체가 남아있는 카웰루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는 지하세계에서 가져온 카웰루의 영혼을 그녀의 죽은 몸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죽었던 카웰루는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비로소 두 젊은 남녀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알게 되었고 이후 부부의 연을 맺고 하와이 섬에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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