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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데메테르 ①그녀가 울면 땅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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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데메테르(Demeter, 로마 신화의 케레스Ceres)는 대지의 여신이다. 같은 별명의 가이아가 만물의 근원으로서 대지의 여신이라면 데메테르는 곡물과 땅의 생산력을 관장하는 실질적인 의미의 대지의 여신이다. 그녀의 별명답게 데메테르는 밀 이삭으로 만든 관을 쓰고 양손은 밀 이삭을 쥔 모습으로 표현된다. 올림포스 열 두명의 으뜸신 중 한 명으로 제우스(Zeus, 로마 신화의 유피테르Juppiter), 포세이돈(Poseidon, 로마 신화의 넵투누스Neptunus), 하데스(Hades, 로마 신화의 플루토Pluto 또는 디스Dis)와는 남매지간이고 헤스티아(Hestia, 로마 신화의 베스타Vesta), 헤라(Hera, 로마 신화의 유노Juno)와는 자매지간이다. 이들 남매의 부모는 티탄 신족의 크로노스(Cronus, 로마 신화의 사투루누스Saturnus)와 레아(Rhea, 로마 신화의 옵스Ops)다.


데메테르가 곡물과 땅의 생산력을 관장한다는 추상적인 의미를 구체화시켜 주는 이야기는 그녀의 딸 페르세포네(Persephone, 로마 신화의 프로세르피나Proserphina)의 납치사건을 통해서다. 납치사건의 전모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페르세포네는 데메테르와 그녀와 남매지간인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게다가 또 다른 남매지간인 하데스에게 납치를 당했으니 삼촌이 조카를 납치한 셈이다. 죽음과 저승의 신 하데스가 납치했다는 것은 실제로는 죽음을 의미한다. 어쨌든 태어날 때부터 비범한 미모를 가진 탓에 어머니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를 시칠리아 섬에 숨겨 키웠다. 미인박명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다 통하는 말인가 보다. 어느날 페르세포네는 골짜기에 핀 수선화를 꺾으려다 하데스에게 납치당했다. 수선화를 꺾으려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데메테르는 밀이삭을 양손에 들고 밀이삭관을 쓴 모습으로 등장한다. 출처>구글 검색


딸바보였던 데메테르에게 페르세포네의 잠적, 납치는 그야말로 죽음과도 같았다. 밤낮없이 딸을 찾느라 몸은 점점 야위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마법의 여신 헤카테(Hecate)가 딸이 납치되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것을 알고는 찾아갔지만 헤카테도 정작 납치범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대신 태양신 헬리오스(Helios, 로마 신화의 솔Sol)는 보았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놀랍게도 페르세포네의 납치범은 외삼촌 하데스였다. 하지만 아무리 신이라도 지하세계, 하데스가 지배하는 죽음의 세계는 범접할 수 없었다.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신을 한탄하며 데메테르는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데메테르가 딸을 잃은 슬픔으로 상심에 빠져 있을 때 대지는 메말라갔고 곡식은 타들어갔으며 제대로 수확이 되지 않으니 여기저기서 죽아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곡물과 땅의 생산력을 담당하고 있던 데메테르가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니 당연지사였다. 보다못한 제우스가 나섰다.


제우스는 지상의 상황을 설명하며 하데스에게 페르세포네를 어머니에게 돌려보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하데스가 이런 상황이 올 줄 모르고 있었을까? 하데스는 이미 페르세포네에게 저승의 과일 석류를 먹게 해서 이런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다. 저승의 음식을 먹으면 그곳을 떠날 수 없다는 저승의 법칙을 악용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신들에게 제사를 지낼 인간들이 다 사라질 판이었다. 난봉꾼이었던 제우스에게도 이런 솔로몬의 지혜가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제우스는 절충안으로 페르세포네를 데메테르와 하데스 사이를 왕래하며 살게 했다. 즉 해마다 10월이 되면 어머니 데메테르와 살고 다음 해 6월이 되면 다시 저승으로 내려가 하데스와 살게 했던 것이다. 이 기간은 지중해성 기후인 그리스에서 밀의 파종과 수확 시기와 겹친다고 한다. 밀 수확이 끝나는 6월부터 밀 파종이 시작되는 10월 초까지는 페르세포네가 어머니 곁을 떠난 탓에 데메테르의 슬픔에 대지가 메마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후로 따지자면 봄부터 가을까지는 페르세포네가 지상으로 올라와 어머니 데메테르와 사는 기간이고 겨울은 다시 저승으로 내려가 하데스와 사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던 고대인들에게 계절의 변화와 곡물의 흉작은 오로지 신들의 장난(?)이었던 것이다. 대지와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 그녀가 울면 땅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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