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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메소포타미아

'노아의 방주' 원래 주인공은 '우트나피쉬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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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바빌론 신화/우트나피쉬팀 Utnapishtim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이브의 자손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땅 위에서 번성해 갔다. 그러나 인간이 늘어나면서 땅 위에는 악이 만연하게 되었다. 이런 인간 세상을 지켜보던 신은 홍수를 내려 인간들을 심판하기로 결심했다. 단 한 명, 신에게 순종했던 노아만 살려두기로 했다. 신은 노아에게 홍수에 대비해 방주를 만들 것을 명령했고, 아들 세 명과 함께 각고의 노력 끝에 방주를 완성시켰다. 신은 노아와 그의 아내, 세 아들 그리고 동물 몇 쌍과 새 몇 쌍만 방주에 탈 것을 명령했다. 땅 위의 모든 생명체를 없애버릴 계획이었다.


구약성서 속 노아의 방주 이야기


신의 예언대로 폭우가 쏟아졌고 홍수가 수 십일 동안 계속되었다. 방주에 타고 있던 노아의 가족과 몇몇 짐승과 새를 제외한 지상에 남아있던 모든 생명체가 사라졌다. 홍수가 멈추자 노아는 까마귀를 날려보내 정착할 육지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날려보낸 까마귀는 매번 그냥 돌아오곤 했다. 노아는 계속해서 까마귀를 날려보냈다. 드디어 저녁 때가 되어서야 돌아온 까마귀의 부리에는 올리브 잎이 물려 있었다. 물이 빠진 육지가 존재한다는 징표였다. 드디어 물이 빠지고 노아의 방주는 아라라트 산에 멈추었고 신은 이곳에서 다시 번성하리라는 예언을 했다. 노아는 그가 데리고 온 가족, 몇 쌍의 동물, 몇 쌍의 새와 함께 방주에서 내린 다음 제단을 쌓고 신을 위해 제물을 바쳤다. 신은 두 번 다시 땅 위의 생명체를 전부 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그 증표로 무지개를 나타나게 했다고 한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구약성서 속 '노아의 방주' 이야기이다. 그런데 '노아의 방주'와 비슷한 이야기가 바빌론 신화에도 존재한다고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바빌론 신화 속 '홍수 이야기'가 '노아의 방주' 이야기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우트나피쉬팀과 바빌론 홍수. 사진>구글 검색


우트나피쉬팀과 바빌론 홍수 이야기


우트나피쉬팀과 바빌론 홍수 이야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에 전한다. 친구 엔키두를 잃고 영원한 생명을 찾아 여행을 떠났던 길가메시가 우트나피쉬팀을 만나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었는지를 묻자 우트나피쉬팀은 자신과 관련된 신들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우트나피쉬팀은 고대 도시 슈르박 출신이었다. 어느 날 물의 신 에아(Ea)가 나타나 신들이 대홍수를 일으켜 인류를 멸망시키려 한다는 신전회의 결과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왜 인류를 멸망시키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신화 속 홍수 이야기처럼 인간의 악행과 오만을 심판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에아는 우트나피쉬팀에게 방주를 만들어 홍수에 대비할 것을 명령했다. 방주가 완성되자 드디어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폭풍의 신 아닷(Adad)은 끊임없이 번개를 보냈고 죽음의 신 네르갈(Nergal)은 궁창의 물을 막고 있었던 문설주를 깨뜨렸다. 인간 세상은 온통 물에 뒤덮이고 말았다. 우트나피쉬팀의 방주만 살아남았다.


우트나피쉬팀의 방주는 니시르 산에 정박했다. 우트나피쉬팀은 물이 빠진 육지를 찾기 위해 비둘기를 날려보냈다. 하지만 비둘기는 육지를 찾지 못했고 우트나피쉬팀은 계속해서 제비를 날려보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우트나피쉬팀은 마지막으로 까마귀를 날려보냈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근처에 물이 빠진 육지가 있다는 증거였다. 육지를 찾은 우트나피쉬팀은 자신과 같이 탔던 동물들과 함께 방주에서 내려 가장 먼저 제단을 만들고 신들에게 제물을 바쳤다. 이 때 홍수의 재앙을 제안했던 하늘의 신 엔릴(Enlil)이 왔고 살아남은 인간이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우트나피쉬팀에게 방주를 만들도록 했던 에아는 엔릴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고 우트나피쉬팀의 운명에 대해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엔릴도 분노를 가라앉히고 에아의 제안에 찬성했고 우트나피쉬팀과 그의 아내에게 축복을 내리고 신처럼 영원히 살 수 있는 불멸의 생명을 주었다. 단 강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살 것을 명령했다. 그곳이 바로 딜문(Dilmun)이었다.


신화의 신학화 과정


살펴본 대로 '노아의 방주'와 '우트나피쉬팀의 방주'는 등장인물만 다를 뿐 내용 전개가 거의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비단 '노아의 방주' 뿐만 아니라 아담과 이브 이야기, 카인과 아벨 이야기 등이 수메르와 바빌론 신화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화의 전승이 신학이 되었을까?


모세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많은 사건들이 구전되면서 각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왔다. 아마 수메르와 바빌론 신화 등도 다양한 각색을 거치면서 이스라엘 지역에서 구전으로 전승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B.C 10세기 경 다윗 왕 때부터 몇몇 서기관들에 의해 기록되기 시작했고 솔로몬 왕 때는 본격적으로 구전된 이야기들이 문서로 작성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야훼 신앙에 입각해 재해석되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신화가 종교로 자리매김 되었던 것이다. 근대 이후 메소포타미아 문명 지역에서 발굴된 점토판을 통해 신화의 신학화 과정이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참고로 '노아의 홍수'는 바빌론의 '우트나피쉬팀의 홍수' 이전 수메르의 '지우수드라(Ziusudra)의 홍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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