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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아폴론과 히아킨토스, 너를 영원히 기억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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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신스라는 꽃이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이름이 낯설어서 그렇지 동네 꽃집을 지나치다 보면 한번쯤 보았을 그런 꽃일 수도 있다. 마치 수국처럼 보라색의 작은 꽃잎이 대여섯 장씩 붙어 있는 꽃이 히아신스이다. 때로는 투명 유리컵에 꽂아 놓아 물밑으로 보이는 하얀 수염뿌리가 보이기도 한다. 대부분의 꽃이 그렇듯이 히아신스도 꽃말이 있는데 '기억'이라고 한다. 히아신스의 꽃말이 '기억'이 된 데는 그리스 신화 속 히아킨토스Hyakintos라는 청년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태양신 아폴론의 사랑은 늘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으로 끝난다. 다프네와의 사랑이 그랬고, 카산드라와의 사랑이 그랬다. 요정이나 공주와의 사랑조차도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거늘 사내와의 사랑은 오죽 했을까 싶다. 히아킨토스가 바로 아폴론의 동성 연인 중에 한 명이다. 스파르타 근처의 아미클라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난 히아킨토스. 그에게 무슨 매력이 있었는지 아폴론은 그를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했다. 아폴론은 운동할 때도, 사냥할 때도, 산책할 때도 늘 히아킨토스를 데리고 다녔다. 오죽했으면 아폴론이 그를 만날 때면 그 좋아하던 수금 연주나 활 쏘는 것까지 잊고 지냈을까!

 

▲히아킨토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폴론. 사진>구글 검색


하지만 둘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다. 어느 날 아폴론과 히아킨토스는 원반던지기 놀이를 하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원반을 주거니 받거니 여느 이성 연인 못지 않게 다정스럽고 행복한 표정으로 말이다. 했다. 이 즐거운 시간 뒤에 엄청난 슬픔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아폴론의 원반을 받던 히아킨토스가 실수로 땅에 떨어져 튀어오르던 원반에 이마를 맞고 말았다. 히아킨토스는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순간 아폴론의 심정은 굳이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신화의 또 다른 버전은 아폴론을 짝사랑했던 서풍의 신 제피로스Zephros가 일부러 바람을 일으켜 원반을 히아킨토스의 이마에 명중시켰다고 한다. 질투가 빚어낸 비극이 아니었을까. 


아폴론은 쓰러진 히아킨스를 껴안고는 통곡했다. 별의 별 치료법을 다 동원해 봤지만 아폴론이 제 아무리 뛰어난 신일지라도 죽음이라는 운명마저 바꿀 수는 없었다. 히아킨토스는 끝내 아폴론의 품안에서 숨을 거두었고 아폴론은 탄식하며 부르짖었다. "내 너와의 추억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또 너를 내 탄식이 아로새긴 꽃이 되게 하리라." 아폴론의 조화였을까 땅바닥을 흐르던 히아킨토스의 피는 한 곳에 모여 꽃으로 피어났다고 한다. 이 꽃이 바로 히아신스다. 이런 연유로 히아신스의 꽃말이 '기억'이 되었다고 하며 히아신스 꽃잎에 보이는 'AIAI' 흔적은 아폴론의 탄식이라고 한다. 


히아신스에는 아폴론과 히아킨토스의 사랑 말고도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화살에 맞고 전사하자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가 그의 시체를 찾아왔다. 그리스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다른 장수들과 협의한 끝에 아킬레우스의 갑옷과 무기를 오디세우스에게 주기로 결정했다. 이에 실망한 오디세우스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양떼를 그리스군으로 착각하여 모두 죽인 뒤 전리품인 트로이 장수 헥토르의 칼로 자살했다고 한다. 이 때 오디세우스의 피가 모인 곳에 피어난 꽃이 히아신스라고 한다. 이 이야기 또한 오디세우스가 아킬레우스를 기억하고자 그의 유품을 두고 아이아스와 싸움 끝에 자살했다는 점에서 히아신스의 꽃말 '기억'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겠다.


영원히 기억하고픈 이가 있다면 히아신스 한 송이로 사랑을 표현해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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